국내 첫 정통 독일식 수제소시지…왜관수도원, 60여년 전통을 만들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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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34면   |  수정 2017-10-13
■ 푸드로드 칠곡군
20171013
냉장보관 중인 겔브부어스트. 시중 국내산 소시지와 달리 생육 함유량이 95% 이상이다. 작은 사진은 독일 본토의 맛을 갖고 있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명물인 소시지(왼쪽)와 소시지를 자른 단면.

성 베네딕도회는 이탈리아 성인 베네딕도(480∼547)를 따르는 유럽 최초의 수도 공동체다. 한국에 진출한 건 1909년. 베네딕도회 산하 독일 오딜리아 연합회에서 수도자 2명을 서울로 파견했다. 수도자들은 현재 서울 중구 혜화동 동성중고 자리에 수도원과 학교를 세웠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함경남도 덕원, 중국 옌지(延吉)로 수도원을 옮긴 뒤 6·25전쟁 중 부산으로 피했다가 현재 자리에 정착했다. 수도원은 일반 성당보다 더 세상사와 거리를 둔다. 그런데 왜관수도원은 왜 복잡한 왜관역 근처에 자릴 잡았을까. 당시 교통망이 잘 구비돼 있었던 왜관역 근처에 자릴 잡았다가 통일되면 북으로 수월하게 올라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일이 여의치 않아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1953년 피란지 부산서 現자리 옮겨 정착
자급자족 원칙에 소시지도 직접 가공
수사들 먹고 신도에 선물로 나눠주다
2011년부터 일반인에 판매…시중 유통

4년간 獨서 기술 익힌 박요셉 수사 책임
겔브·바이스·마늘 3종류 소시지 생산
국내산 돼지에 독일산 향신료·소금 간
고기함량 95% 이상·부드러운 식감 일품


왜관수도원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 수도원은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는 게 원칙이다. 예전에는 수도원 안에 방앗간까지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못하지만 목공소, 출판사 등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한다. 수도원에는 10만㎡ 면적의 전답도 딸려 있다. 수도원은 직접 수확한 쌀로 밥을 짓고 텃밭에서 키운 오이·양파·파 등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

수도원 소시지는 오래도록 일반인에게 판매되지 않았다. 수사들이 먹고 신도들에게 나눠주던 선물이었다. 왜관수도원의 국내 첫 독일식 수제소시지도 그랬다. 육가공산업이 일천했던 1970년대만 해도 ‘수도원표 소시지’는 왠지 ‘성물(聖物)’ 같았다. 시중에는 소시지, 햄류가 나오기 전이었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입소문 덕분에 교인들의 주문량이 늘어났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판매하자는 의견이 나와 ‘분도(베네딕도의 한자 음역)식품’을 설립한 것. 이 소시지가 세인들에게 선보이게 된 건 2011년. 그해 8월 소시지를 만들 수 있는 작업장이 수도원 안에서 밖으로 옮겨졌다. 추가적으로 시중에도 유통될 수 있도록 경북도 식품가공업체로 등록했다.

왜관수도원 바로 옆 분도식품을 찾았다. 독일소시지의 원형을 현지에서 배워온 분도식품의 책임자인 박요셉 수사를 작업장 한편에서 만날 수 있었다. 평상복 차림의 그에게서는 수사란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소임 때문에 소시지를 만들 뿐 본분은 ‘기도’다.

2006년 입회한 부산 출신의 박 수사는 정식으로 소시지를 배우기 위해 독일로 갔다. 2012년부터 4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수도원에서 기거하며 별별 소시지 공정을 다 경험했다. 한국에 정통소시지 기술이 형성되기 전이었다. 시중에는 고작 엄지손가락만한 도시락반찬용 ‘비엔나 소시지’와 어묵 같은 ‘프랑크 소시지’가 유통됐다. 이것은 원재료에 충실치 않아 그냥 무늬만 소시지였다. 그가 완성된 소시지 냉장저장고 안으로 안내했다. 매달린 소시지가 시렁에 주렁주렁 걸린 상주 곶감 같았다. 원육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본토 소시지 덕인지 왜관이 아닌 독일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왜관수도원 소시지 이야기

동물의 창자에 피와 당면, 채소류가 들어가면 한국식 ‘순대’가 된다. 속을 양념해 다진 고기를 넣어 삶아내면 소시지가 된다. 소시지의 어원은 ‘소금에 절인다’는 라틴어 ‘살수스(Salsus)’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소금 간을 세게 하여 건조시킨 향이 강한 이탈리아식 소시지 ‘살라미(Salami)’도 소금을 어원으로 두고 있다. 소시지와 햄은 비슷한 것 같은데 레시피는 좀 다르다. 햄은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인 후 훈연하여 만든 독특한 풍미와 방부성을 가진 육가공품이다.

소시지는 독일어로 ‘부어스트(Wurst)’라 한다. 소시지를 만들 때 사용하는 양념과 향신료는 소금을 비롯해 고수열매, 정향, 마늘, 식초, 육두구가루, 후추, 피스타치오열매 등 다양하다. 다진 고기를 싸주는 피막을 ‘케이싱(Casing)’이라 한다. 동물내장, 파라핀으로 처리한 섬유자루, 합성 케이싱인 플라스틱이나 인조 콜라겐 등도 있다.

여기서 판매되는 소시지는 모두 3종(마늘부어스트·겔브부어스트·바이스부어스트). 겔브는 독일어로 ‘오렌지색’, 바이스는 ‘흰색’이란 뜻.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겔브부어스트는 케이싱이 좀 특별나다. 삶기 전에는 비닐이지만 삶고 나면 종이처럼 찢겨진다. 바이스부어스트는 돼지내장을 케이싱으로 사용한 것으로 겔브부어스트와 함께 독일 뮌헨 지역 방식이지만 통고기 살점이 점점이 박혀 있는 바이스부어스트가 원육의 식감을 더 느끼게 해준다.

박 수사가 시식해 보라며 3종의 소시지를 얇게 썰어준다. 전분 등을 과도하게 첨가한 저급한 소시지를 먹었을 때의 푸석거리는 식감이 거의 없다. 그동안 먹었던 술안주용 소시지와는 탄력, 고기 첨가량이 사뭇 달랐다. 박 수사도 전날 잡은 돼지의 뼈와 비계, 힘줄 등을 갈라내는 수작업을 직원과 함께한다.

돼지만 국내산을 사용할 뿐 다른 건 모두 독일에서 수입해 온다. 독일산 향신료와 소금으로 약간의 간을 할 뿐 합성조미료 등의 첨가물은 언감생심. 고기 함량이 무려 95% 이상이다.

돼지고기에 간을 하고 갈아서 케이싱에 넣은 후 74℃의 물에서 서서히 삶아낸다. 100℃에서 30분이면 충분하지만 저온 가열 방식이라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린다. 그러나 천천히 익히는 까닭에 소시지 식감이 매우 부드럽다. 이후에는 냉각과 건조를 거쳐 영하 5℃ 이하의 온도에서 냉장 보관하면 된다. 유통기한은 30일.

마늘소시지는 마늘과 후춧가루, 채소 등을 첨가해 한국인의 입맛에 더 잘 맞는다. 가격은 1만5천~2만원. 왜관수도원(택배 가능)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에서 판매한다.

◆캠프캐럴 앞 한미식당

수도원 소시지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음식점 두 곳을 찾았다. 석적읍 캠프캐럴 후문인 게이트4 바로 앞에 있는 ‘한미식당’과 동명면 기성리에 있는 ‘선녀와 나무꾼’이다.

점심 때 게이트4 앞에 왔다. 꽤 한산하다. 부대 음식이 안맞아 한인 식당을 찾은 미군들이 좀 보였지만 요즘은 한국 손님이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밤이면 클럽이 가동돼 좀 낫겠지만 기지촌문화도 예전 같지 않다.

미군부대 앞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환락의 공간인 ‘기지촌’. 미국발 식문화와 공연문화는 이 기지촌에서 다시 한 번 크게 굴절됐다. 용산, 동두천 캠프 케이시, 평택 캠프 험프리, 의정부 캠프 레드크라우드, 군산 아메리칸타운, 춘천 캠프 페이지, 이젠 시민공원이 된 부산 캠프 하야리아, 광주 송정리, 이태원, 그리고 대구의 캠프 워커와 헨리…. 참으로 많은 미군부대가 우리 생활권 바로 옆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다. 미군 클럽은 한국 뮤지션의 로망이었고 거기에 딸린 레스토랑은 지역 기관단체장들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준 배타적 공간이었다. 이곳에 갈 수 있다는 건 그가 곧 ‘갑’이란 걸 암시한다. 이들 기지촌은 1960~80년대가 절정이었다. 이와 맞물려 특수를 노린 양공주가 미군의 ‘기쁨조’가 되었다. 이 양공주와 KSC(Korean Service Corps·6·25전쟁 당시 창설돼 8군을 지원한 한국군무원의 통칭), 하우스보이 등을 통해 미군 PX와 매스홀(사병들의 레스토랑)의 식품류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휴전 이후 60년대 초까지 국내 경기는 최악이었다. 밥을 얻어먹기 위해 돌아다니던 거지가 지천으로 깔렸다.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문화도 별로 형성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때 미군부대에서 나온 소시지, 햄버거용 패티와 번, 햄, 베이컨 등은 ‘꿈의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 W3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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