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뚜르 드 프랑스: 세기의 레이스’ 로렌트 투엘 감독(2014,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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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42면   |  수정 2017-10-13
다시, 심장소리를 듣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뚜르 드 프랑스: 세기의 레이스’ 로렌트 투엘 감독(2014, 프랑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뚜르 드 프랑스: 세기의 레이스’ 로렌트 투엘 감독(2014, 프랑스)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은 다른 이의 인생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혹은 질투할 틈이 없다. 오직 자신만의 경주를 힘을 다해 달릴 뿐이다.

2016년 여름은 몹시도 더웠다. 미칠 듯이 더웠던 여름 내내 나는 책의 막바지 작업에 매달렸다. 그간 써온 영화 에세이를 모은 책 ‘영화의 심장소리’ 였다. 참으로 열정적인 여름이었다. 거짓말처럼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제법 근사한 표지를 한 책이 떡하니 눈앞에 나타났다.

책을 내고 나니 여러 가지 마음이 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주로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번갈아 나타났다가는 모습을 감추곤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책을 선물로 주었다. 책을 여러 권 사주며 축하를 몸소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는 고마운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눈치를 봤다. 그들이 책에 대해 뭐라도 말해주기를 마음 졸여 기다렸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들 때문에 마음이 적잖이 서운했다. 특별히 좋아하거나 기대가 컸던 사람일 경우에는 서운함이 더 컸다. 그리고 알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무심하다는 것을. 그리고 책을 내는 일은 철저히 나의 일인 것을. 몇몇 소중한 친구들의 진심어린 축하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무관심이 못내 서운했던 나는 책을 낸 지 보름 만에 기운이 쪽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약간의 우울함과 무기력에 다시 빠져있었다(사람들은, 그래서 출판기념회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기를 며칠, 어느 순간엔가 마음속에 천둥벼락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더 외로워져!”

사실 내가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책을 낸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책을 내고 나면 아마도 외로움이 사라질 줄로 내심 기대했던 모양이다. 내가 얼마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술적 소양이 넘치는 사람(?)인가를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결국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책을 낸 것이었다.

더 외로워지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사람들 주위에서 기웃거리기를 멈추고, 다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조금씩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메릴 스트립의 ‘어바웃 리키’를 봤고, 르네 젤위거의 좌충우돌 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를 봤다. 그러다가 나는 사람들이 거의 보지 않는, 숨어있는 영화 하나를 찾아냈고, 거기에서 다시 ‘영화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나에게 다시 심장이 뛰게 한 것은 프랑스 영화 ‘뚜르 드 프랑스: 세기의 레이스’였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권위 있는 사이클 대회가 소재인데, 3주 동안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를 일주하며,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가 결승점이다. 영화는 이 사이클 대회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 사이클 선수가 꿈이었지만, 현재는 사이클 회사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중년남자 프랑수아의 모험을 그린다. 부인이 떠나고, 해고를 당하고, 모든 것이 뒤엉켜 바닥인 것 같을 때 진짜 꿈이 시작되는 것은 인생의 아이러니다.

쟁쟁한 프로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사이, 평범한 중년 남자 프랑수아는 아마추어로서 자신만의 경주를 펼친다. 자신만의 경주는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다.

나는 프랑수아가 철저히 외로워지는 장면에서 가슴이 뛰었다. 누명을 쓰고, 모두가 비난을 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레이스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자신만의 레이스에서 힘겹게 한발 한발 페달을 밟다보니, 어느새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져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고 달리다보니, 다시 아들과 부인과 화해하게 되고, 소중한 것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외로워지기로 결심했다. 이 남자처럼 묵묵히 나만의 레이스를 펼치기로. 그러다보면 뭔가 소중한 것들을 더 발견하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삶의 여기저기에서 살아 숨쉬는 소리, ‘심장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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