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잘 못치면 끝장” 시험에 짓눌린 학생들의 적성·꿈

  • 이효설
  • |
  • 입력 2017-10-16 07:27  |  수정 2017-10-16 09:17  |  발행일 2017-10-16 제6면
[공부의 미래 .2] 적성 무시되는 교실
20171016
학생들은 적성·진로보다 성적·대학이 우선시되는 대학 입시 위주 교육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전국 모든 고교 학생들이 같은 교과와 같은 내용을 같은 시간에 공부한다. 대구 한 고교 3학년생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다. <영남일보 DB>

“너는 이제 안된다. 그 성적으로 국어교육과는 안되니 포기해라.”

대구 중구 A일반고 2학년에 재학 중인 박병준군(가명)은 얼마 전 진학 상담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중간고사 때 수학 점수가 많이 떨어졌는데, 담당 교사가 박군의 수학 등급이 낮아 진로 변경을 조언한 것이다.

박군은 교내 각종 인문학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글쓰기·토론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교사들에게 받고 있다. 교사가 되면 ‘교육 평등을 이룰 것’이란 남다른 소신도 있다. 수학 외 다른 과목은 상위권인 박군은 “어릴 적부터 내 꿈은 국어 교사가 되는 것인데, 수학 점수때문에 꿈을 포기하라는 말을 듣고 정말 억울했다”고 말했다.


성적만 따지는 진학 지도 탓에
진로·직업에 대한 고민은 뒷전
학생부 기록 입학전형에 중요
수업시간에도 긴장 못 풀어
아이 꿈 찾아줄 시스템 절실



영남일보는 입시 위주 국내 교육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대구지역 일반고 학생 10여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자신의 적성을 찾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많은 학생들은 시험·점수·경쟁률에 매몰돼 있었다.

“적성, 꿈 같은 건 몰라요. 그것보다 국·영·수를 잘해야 꿈도 이룰 수 있다는 건 알지만요.” 수성구 B고교 이민정양은 이렇게 말했다. 학업 성적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진로·직업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 된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 2016 사회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고민거리’ 1위는 ‘공부’(32.8%)이며, 다음은 진로·직업(28.9%)이었다. 이양에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나중에 혹시 꿈이 생기면 성적때문에 발목 잡힐까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 고교생의 학교 수업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은 점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한 1학년 학생은 “중간·기말 성적이 나오면 2·3학년 때 과목별로 몇 점대를 유지해야 원하는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지 계산하는데, 한 번이라도 잘못 치르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면 수업이 머리에 안들어 온다. 상황이 이러니 성적이 안 나오면 스스로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을 느끼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학생들은 “공부 말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 학교에선 알 길이 없다. 그러니 공부를 못하면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 손 들고 발표하는 사람, 점수 줄게.” 정량평가를 지양하고 학생의 역량·인성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생긴 이후 각 고교에서 흔히 벌어지는 풍경이다. 특히 사회탐구 관련 과목 시간엔 질문의 단서가 하나 더 붙는다. 학생부에 기록된 진로와 관계 있는 것으로 발표해야 써준다는 것.

이에 대해 박군은 “학생부 기록 내용이 입학 전형에서 중요해져 수업시간도 점수를 따야 하는 테스트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점수 때문에 수업은 안 들어도 눈을 뜨고 있는다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적성·진로를 고민해야 할 학교 진로시간은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터뷰한 학생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입시 요강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교사가 각 대학의 성적 커트라인과 최근 수년간 입학 경쟁률을 설명해준다. 특히 입시 전문가들이 학교를 찾아오는 진로특강의 경우, 소수 학생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도 적잖다.

북구 C고교 한 여학생은 “우리 학교 졸업생이 학교에서 수험생활 잘하는 비법을 강의한다고 해서 신청을 했는데, 결국 성적순으로 기회를 줬다. 그때 친한 친구는 특강을 들었고 난 선발이 안돼 못갔다. 학교도 성적 좋은 애들만 챙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신철원 협성교육재단 이사장은 “국내 학교 교육은 여전히 ‘대학’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사람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점수·등급 이야기만 오갈 뿐 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시스템을 교정해도 학교 교육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정원이 입학생보다 많은 시대가 도래했는데, 여전히 점수와 서열만 따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자 이미지

이효설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