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돕는 백성의 마음으로…” 안동시민이 함께 그려낸다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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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6 07:27  |  수정 2017-10-16 07:28  |  발행일 2017-10-16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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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지난 14일 ‘왕의나라’ 출연진이 실내연습장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치며 맹연습하고 있다. 왕의나라 시즌2 ‘삼태사’는 실경뮤지컬로 17∼21일 닷새간 안동민속촌 성곽무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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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안동의 옛 지명) 주민 대표 역할로 출연하는 김종호씨(오른쪽)와 견훤 역의 봉건씨. 부자지간인 이들은 공연에서는 적으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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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경뮤지컬 ‘왕의나라’에 출연하는 필리핀 출신 안동사람 젤린, 안나, 롯(왼쪽부터). 이들은 왕의나라 초기 공연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 ‘고려 바람’이 불고 있다. 성리학 학풍이 서린 서원이나 가문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집성촌인 하회마을 등 조선시대 유교 분위기가 강한 안동에 고려 열풍이 일고 있는 것은 17일부터 안동민속촌 성곽무대에서 열리는 뮤지컬 ‘왕의나라’ 둘째 이야기 ‘삼태사(三太師)’ 공연 때문이다.

‘왕의나라’둘째이야기‘삼태사’
17∼21일 안동민속촌서 공연
시즌1 배경에서 500년 거슬러
건국기 왕건과 안동 인연 다뤄

5년 만에 다시 실경 뮤지컬로
주변 경관 즐길 수 있어 매력
제작 전과정에 지역요소 스며

주최 측, 시민 참여 강한 의지
출연자 80명 중 50명 안동시민
연극父子 무대선 적으로 만나
다문화 가정 며느리들도 출연


?◆1천년 만에 다시 만나는 고려

안동에는 고려와 관련해 다양한 설화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2011년부터 선보인 ‘왕의나라’ 첫째 이야기(시즌1) 역시 고려의 마지막 중흥군주였던 공민왕과 안동의 인연을 다뤘다. 시즌1에서 ‘왕의나라’는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공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 왕실 호위장군 홍언박과 왕비 호위무사 만옥의 애절한 사랑, 목숨을 버리면서도 고려를 지키려 했던 여랑의 애틋한 사연이 중심을 이뤘다. 또 공민왕이 고려를 회복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던 정평공 손홍량,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던 고려 대신, 그리고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안동에 머무는 동안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던 안동 민초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올해 선보이는 둘째 이야기는 이보다 약 500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후삼국시대 견훤과 치열한 통일전쟁을 이어가던 고려 태조 왕건과 안동의 인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고창으로 불렸던 안동은 경주와 소백산맥 북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때문에 왕건과 견훤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개성 출신인 왕건은 상주 출신인 견훤에 비해 지역적 기반이 약한 데다 군사력 또한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때 고창지역 호족세력은 왕건의 편을 들어 통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중심에는 김선평·권행·장정필이 있었다. 왕건은 세 사람의 공을 기려 김선평을 대광(大匡)으로, 장정필과 권행은 대상(大相)으로 삼아 등용했다. 왕건은 고창의 이름을 ‘동쪽을 편안하게 했다’는 뜻으로 안동(安東)이라고 바꾸었다. 이처럼 안동은 지명 자체부터 고려 건국 과정과 밀접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공연자와 관람객이 함께하는 실경뮤지컬

올해 선보이는 ‘왕의나라’ 공연은 고려 개국 공신인 삼태사라는 새로운 스토리 론칭에 맞춰 5년 만에 다시 실경으로 무대를 넓혔다. 실경뮤지컬은 실제 경치를 배경으로 한 야외 공연이다. 보편적인 실내 공연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만큼 장·단점이 뚜렷하다.

공연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실경뮤지컬이 실내공연보다 까다롭기 그지없다. 원체 무대가 거대하다 보니 관객들을 오롯이 공연에 집중하게 하기 힘들다. 또 의상이나 배경 교체 등 관객에게 감춰야 하는 부분까지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윤은향 안무감독(43)은 “실경무대에 적합한 안무로 관객 눈높이에 맞춰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면서 “실경뮤지컬의 안무는 극을 살리면서 줄거리 속에 적절한 배치가 필요하다. 특히 뮤지컬은 대중적 요소가 다분한 만큼 관객의 호응 역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야외 무대를 선택한 것은 안동시민이 참여하는 무대로 만들겠다는 주최 측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윤단 제작감독(45)은 “야외무대는 문턱이 낮아 관람객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다. 또 짜인 틀이 없어 관객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실경무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윤단 감독은 “실경뮤지컬이지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디어파사드(건물 외벽 등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 기법을 도입했고, 일루전(대형장비를 활용한 마술) 기법을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윤은향 안무감독도 “산수실경뮤지컬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무대 자체가 실경이기 때문에, 주변의 경관과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면서 “가을밤 안동댐민속촌 성곽 야외 특설무대를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안동의, 안동에 의한, 안동을 위한 공연

이번 ‘왕의나라 - 삼태사’ 공연은 말 그대로 안동의 축제가 되고 있다. 핵심 줄거리뿐만 아니라 제작 전 과정에 안동의 인적·물적 요소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안동의 전통문화자원을 활용한 무대와 함께 그 속에서 공연하는 출연자 중 상당수가 안동 시민이다. 윤단 감독은 “지역 창작 공연문화콘텐츠의 대표적 성공사례답게 80여명에 달한 출연자 중 50명 이상이 안동사람”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하다보니 재미있는 사연도 많다. 최고령 출연자인 김종호씨(72)는 안동연극협회장 출신으로 40년 이상 연극을 해온 베테랑이다. 왕의나라 초창기 무대부터 출연해 오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부친과 같은 연극인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 봉건씨(40)도 이번 공연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고창주민으로, 아들은 견훤역으로 출연해 무대에서는 적으로 만나게 된다.

앳된 얼굴의 어린 출연자도 눈에 띈다. 7세에서 13세 어린이 출연진 11명이 공연 완성도를 높인다. 최연소 출연자인 피한별 학생(7)은 “안동에서 열리는 공연에 출연한다고 하니 주위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한다”며 웃었다. 출연자 중에는 앙상블 배우로 무대에 서는 다문화 가정 며느리들도 눈에 띈다. 필리핀 출신으로 안동에 사는 젤린(31), 안나(47), 롯(34)이 그들이다. 왕의나라 초창기 공연에도 오른 바 있는 이들은 “예전에 출연해 본 적 있지만 그래도 공연에 나서게 되면 설레면서도 떨린다”면서 “왕의나라 공연에 참여하면서 어엿한 안동사람이 됐다고 느꼈다. 이제는 우리가 왕의나라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며 웃었다.

윤단 감독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어울리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분은 넉넉한 여유로, 어린 학생은 재기발랄함으로 기운을 복돋웠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경북도·안동시·영남일보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이 주관하는 실경뮤지컬 ‘왕의나라’ 둘째 이야기 ‘삼태사(三太師)’는 17일부터 21일까지 안동시 안동민속촌 성곽 특설무대에서 공연된다.

글·사진=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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