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할머니의 사랑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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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6 07:51  |  수정 2017-10-16 07:52  |  발행일 2017-10-16 제18면
“어릴적 조부모와 친밀감, 아이들 인성교육에 큰 도움”
20171016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그래, 그래.”

언제나 할머니는 ‘그래, 그래’ 라고 말하십니다. 안전에만 문제가 없다면 어지간해서는 ‘안 돼’를 말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그렇게 허용만 하는 할머니의 교육방법을 매우 걱정하셨습니다.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탕을 하나 줄 때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조건을 달고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거 먹고 이를 꼭 닦아야 한다. 그래야 충치가 안 생기니까. 또 한 개만 먹으렴, 너무 많이 먹을 땐 배탈이 날 수 있단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제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치아 건강 면에서 봤을 때는 엄마의 태도가 옳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는 할머니가 더 좋았습니다.


“엄격한 훈육·훈계 ‘하지마 교육’
자칫 인성과 감정 메말라 갈수도
할아버지·할머니 너그러운 교육
가족구성원간 긍정적 관계 형성”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던 날, 추석을 앞두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속에는 꼬깃꼬깃 접힌 봉투 몇 개가 있었습니다. 그 봉투 구석에는 삐뚤삐뚤 한 글씨로 손자, 손녀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만 원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포기하여 집에 오신 할머니는 그렇게 손자, 손녀들의 추석 선물을 준비해 두었던 것입니다. 추석 하루 전 임종하셔서 미처 추석 선물을 전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우리는 할머니의 유품 속에서 자기 이름이 적혀있는 봉투 하나를 받아들고 할머니의 사랑에 눈물 흘렸습니다. 본인 몸이 아플 때에도 손자, 손녀를 걱정하던 할머니입니다. 그 손자와 손녀는 그런 할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으로 자라왔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이 아이들의 교육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하지 마’교육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호기심은 가득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말 것을 아이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집안에서 뛰어서도 안 되고, 흙장난으로 옷을 더럽혀서도 안 됩니다. 세수를 건너뛰어서도 안 되고, 군것질의 즐거움도 누려서는 안 됩니다. 물론 아이를 교육함에 있어서 엄격한 훈육과 훈계, 따끔한 충고와 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엄격함보다는 ‘할머니의 사탕’과 같은 허용적인 교육이 더 교육적 효과가 있을 때가 많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로 잰듯 계획적인 교육의 반대로 조부모의 무조건적 사랑이 오히려 아이들의 메말라가는 인성을 촉촉하게 자라나도록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할머니 밑에서 자라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필자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구시교육청에서는 ‘조손관계회복’을 통한 인성교육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또 학교현장에서도 ‘할매할배의 날’을 운영함으로써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교육적 효과에 인성교육을 기대어 보려 합니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의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조손관계회복교육은 가정의 교육기능을 회복하여 바른 인성을 함양하며 조부모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의 긍정적 관계 형성을 위한 기회를 갖고자 함입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과도한 욕심과 바람으로 자칫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조부모의 절제된 너그러움과 경험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친밀감을 맺고 소통하는 게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은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조사정(烏鳥私情)은 진(晉)나라 무양 사람 이밀(李密)의 ‘진정표’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이밀의 ‘진정표’는 이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읽고 울지 않으면 우애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한유(韓愈)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더불어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명문으로 꼽힙니다. 오조사정은 ‘까마귀가 자라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이 부모님을 모시는 효성’을 말합니다.

추석 전날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석 다음날 산에 모시고 왔습니다. 산소에서 태울 옷가지를 고른다는 이유로 할머니 방을 정리하면서 오조사정을 떠올리며 부끄러움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벌써 쓰지 못해 예전에 버렸어야 하지만 할머니의 애착으로 버리지 못한 유품을 정리하여 마당 한구석에 그 많은 물건들을 내어 놓던 날 하늘에선 비가 내렸습니다. 마당 주변을 날아다니던 까마귀가 그날따라 새삼스럽게 날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금 할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날입니다. 그 할머니의 사랑이 지금 나를 있게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김원구<대구포산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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