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재건축, 재개발 그리고 도심재생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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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6   |  발행일 2017-10-16 제31면   |  수정 2017-10-16
[월요칼럼] 재건축, 재개발 그리고 도심재생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재건축이 추진 중인 아파트를 볼 때, 필자는 ‘누군가는 고통을 받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재건축으로 아파트 가격이 올라 즐거워하는 사람 뒤에, 재건축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재건축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을 본 건, 10여년 전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재건축이 추진될 때였다. 재건축을 하려면 거액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데, 그 돈을 감당할 여력이 없으면 아파트를 처분하고 떠나야 한다. 돈이 없어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서러움을 맛보는 것이다.

그게 싫어 재건축을 반대하더라도, 결국은 재건축조합에 살던 아파트를 수용당하게 된다. 재건축 때문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파트를 처분하더라도 대출금부터 갚아야 해, 길거리로 나앉게 된 것도 봤다. 그래서 처절하게 재건축을 반대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노후된 아파트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자산가치까지 높일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 재건축이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단독 주택지의 재개발에서는 아파트 재건축 때보다 더 심하게 재산권을 침해받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생긴다. 내가 잘 아는 어르신이 지금 그렇다. 대구 남구에 사는 그분의 동네는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분 하에 단독 주택들을 모두 허물고 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85세인 어르신은 통칭 약 192㎡(58평) 대지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한 달 방세 수입이 50만원이다. 그분 내외가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버팀목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 한 달 이자로 50만원을 받으려면 4억원 정도는 은행에 예치해야 한다. 그런데 재개발조합이 그분께 통보한 내용은, 58평인 단독주택을 제공하면 30평형대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넓은 단독주택을 내놓아야 좁은 아파트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달에 50만원의 수입까지 날려가면서 말이다.

더 기가 막히는 건 그분이 원치 않는 재개발이지만, 재개발조합이 일정조건을 갖추면 법적으로 그분의 집을 강제 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월세 수입이 차단돼 노부부의 노후가 위협받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그분이 사는 동네에는 저소득층도 많다. 그들이 사는 집은 약 66㎡(20평 안팎)의 규모다. 이들이 재개발로 건립되는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하루 먹고살기에 빠듯한 이들이 추가 부담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결국 작지만 안락했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재개발의 어두운 면이다. 이런 일이 대구 곳곳의 재개발·재건축 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대구의 재개발·재건축단지는 221곳이나 된다.

그렇다면 아파트 재건축처럼 단독 주택지의 재개발도 대안은 없는 것인가. 아니다. 도심재생이 있다. 노후된 단독주택지에 정부자금으로 마을주차장과 복지공간 등을 만들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재개발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고, 도시의 주거지가 일률적으로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단독 주택지의 자산가치도 올라간다. 단독주택을 모두 허문 뒤 그곳에 고층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개발우선시대의 산물이다. 지금 시대에 유용한 선택은 아니다.

대구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라는 도심재생의 성공적인 사례가 있는 도시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한 주택가 골목은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점 때문에 슬럼화되었던 골목이 활기를 되찾았다. 이 커피점 주인은 재개발이 추진되다 무산된 단독주택을 매입해 커피숍으로 변신시켰다. 멋진 인테리어와 커피 맛이 소문나, 이 커피숍에 손님이 몰려들면서 동네가 환하게 달라졌다. ‘김광석’ 같은 예술적 촉매제가 없더라도, 일반주거지에서 도심재생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방증이다.

때마침 문재인정부가 5년간 50조원을 투입해 도심재생을 지원할 방침이다. 오래된 단독 주택지에 고층 아파트를 건립하지 않고도 주거환경을 개선할 기회가 온 것이다. 기회는 잡아야 한다. 대구시와 각 구청은 관할구역 내 단독 주택지의 재개발을 다시 봐야 한다. 재개발이 아닌 도심재생이 적합한 지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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