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다이아몬드 수저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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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7   |  발행일 2017-10-17 제31면   |  수정 2017-10-17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해서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 나오는 여주인공 ‘계나’의 독백 부분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는 우리 사회에 대해 “애초부터 공정한 출발선이 없어졌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지만 이제는 이마저 불가능하다”며 아무리 발버둥쳐도 앞이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를 꼬집었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3월 순자산 10억달러 이상(한화 약 1조1천455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2017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를 발표했다. 포브스는 세계 50위권 억만장자의 64%인 32명은 창업한 자수성가 부자라고 했다. 미국의 금융·경제 전문지 블룸버그도 억만장자지수를 통해 비슷한 통계를 내놨다. 블룸버그는 세계 400대 부호의 259명(65%)은 자수성가형이고, 나머지 141명(35%)은 상속형이라고 했다. 세계 400대 부호 가운데 미국인은 125명이고, 이 중 자수성가형은 89명으로 71%에 이른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아시아에서는 400위권 부호가 가장 많은 중국은 29명 중 28명(97%)이 자수성가형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갑부들의 창업 실태는 외국 갑부들과는 전혀 다르다.

블룸버그는 세계 400위권에 포함된 한국 부호 5명은 모두 재벌 2∼3세로 상속형 부자라고 명시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쌓은 자수성가형 부호는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들의 계급이 바뀐다는 이른바 수저론이 나온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최근 국세청의 창업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30세 미만 부동산임대업 신규 사업자는 7천65명으로 2015년보다 10.3% 증가했다.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 사업장 대표 236명 중 92%가 부동산 임대업에 종사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중에는 연봉 4억원을 받는 5세짜리 대표도 있다고 한다. 자산이 20억원 이상이거나 연간 수입이 2억원 이상인 가정에서 태어나면 ‘금수저’이고, 자산이 5천만원 미만인 가정에서 태어나면 ‘흙수저’라는 말이 나온 이유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대목이다. 우리의 아들과 딸이 금수저나 은수저가 아닌 다이아몬드수저에 밀릴까 마냥 두렵기만 할 뿐이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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