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중아아시아 강제이주 80주년 특집] 우즈베키스탄을 가다 <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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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9   |  발행일 2017-10-19 제6면   |  수정 2017-10-23
“학교에서 1·2등은 고려인…대학진학률 80%, 현지인보다 월등”

우즈베키스탄은 125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국가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살기에 우스갯소리로 ‘밭매는 김태희’라고 할 만큼 미인이 많은 나라다. 2015년 기준으로 인구는 2천900여 만명. 우즈베크인 80%, 러시아인 5.5%, 타타르인 1.5%, 카자흐인 3%, 타지크인 5%, 카라칼파크인 2.5%, 고려인 1%(17만여 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즈베크어가 공용어이고, 러시아어가 통용된다. 재우즈베크 한국교민은 2천500명 정도다. 수도인 타슈켄트시 그랜드미르호텔 인근 가스피탈 바자르 방향에 1㎞ 정도 되는 한국인거리가 있다. 이곳에는 한국식당(23개)과 사무실 등이 밀집해 있다. 우즈베키스탄 한인회는 한인일보라는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 1세대가 많지 않다. 2~4세대가 대부분이며 타슈켄트시(市) 및 주(州)에 주로 살고 있다. 농업과 상업에 주로 종사하며 젊은이들은 러시아나 한국 등지로 떠나고 있는 형편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3명의 코리안을 만났다.


25년 만의 고려인 국회의원 박 빅토르
“통일 되면 초강대국 될텐데…남북 대화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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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빅토르(59)는 고려인 3세다. 그는 우즈베키스탄공화국 국회의원 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고려인문화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재작년 여당인 ‘자유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우르타치르칙 지역에서 56%의 지지를 얻어 고려인으로는 25년 만에 당선됐다. 우즈베키스탄은 상원(150명)과 하원(100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는 현재 하원의 유일한 고려인 국회의원(임기 5년)이다.

“올해는 고려인 중앙아시아 정주 80주년이고 한-우즈베키스탄 수교 25주년의 뜻깊은 해입니다. 지난해 대구에 가본 적이 있는데 대구에서 이렇게 귀한 손님이 와 반가워요.”

그가 서툴지만 한국어로 말했다.

“고려인문화협회는 타슈켄트시에 있어요. 이밖에 타슈켄트주(8개)를 비롯해 총 32개 고려인문화협회지부가 있습니다. 회장·부회장을 비롯해 과학, 문화, 스포츠 등 15개 분과가 있고 고려인노인협회도 문화협회 소속입니다. 고려인문화협회는 고려인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각종 문화사업을 실시하고 있어요.”

그는 타슈켄트주 베카바드시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박익주)는 러시아 연해주 수찬 지역에서 한의사를 하며 말 농장주를 하다 1937년 10월에 강제이주됐다. 집단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2개월도 안 돼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할아버지집에서 이웃집 산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고려인은 머리가 좋습니다. 학교에서도 1~2등은 다 고려인이에요. 우즈베키스탄인들의 대학진학률은 30% 정도인데, 고려인은 80%나 됩니다.”

그는 옛 소련 시절 국립 카자흐스탄대에 유학했다. 이후 소련의 명문 레닌그라드대학(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했다. 군입대 후 결혼해 한 주물공장에 취업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공장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소비에트 국영 변압기 공장으로 스카우트돼 부사장까지 오른 뒤 정부 건설부 전기시스템 차관으로 승승장구했다. 1991년엔 건축회사를 차려 건설 중장비 50대와 2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견 건설회사로 키웠다. 1990년대 그의 회사는 우즈베키스탄 곳곳에서 대형 방직공장을 25개나 건설하는 등 공장 건설분야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그는 고려인 행사에 빠짐없이 후원을 했다. 그런 그를 2012년 고려인문화협회 원로들이 고려인 대표로 추대했다. 현지 경제인단체에도 가입했는데, 그곳 추천을 받아 지난해 선거에 출마했다.

“회장으로 저를 초빙했는데 잘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어요. 중국, 일본, 미국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에는 동포들이 네 번째로 많이 살고 있지요. ”

그는 고려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남북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얼마전 나와 한국사람이 대화를 했는데 우즈베키스탄인이 통역을 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핏줄이고 얼굴이 비슷한데 왜 이렇게 됐나요. 남북분단도 부끄럽지요. 통일이 되면 우리민족은 세계 초강대국이 될 텐데 안타깝습니다. 지난해 8월 핵무기개발 미사일실험 등으로 우즈베키스탄 북한대사관이 폐쇄됐어요. 난 남한이 북한과 대화해야 하고 북한이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봐요. 기피하면 안 되고 대화만이 살길입니다. 북한대사관이 폐쇄되기 전 남과 북의 대사를 초청해 함께 식사자리를 마련했는데 통일을 일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안동 출신 김세동씨
“처음 시작할 때 5개였던 한국식당 지금은 4배 이상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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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씨(57)는 안동 출신이다. 그는 타슈켄트시 그랜드미르호텔 옆에서 삼겹살과 양고기가 주메뉴인 가마솥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우즈베키스탄과 월드컵 예선경기를 하기 위해 타슈켄트에 온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이 이곳에서 회식을 할 정도로 맛있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1999년 IMF외환위기 이후 <주>갑을방적 우즈베키스탄 공장 총무과 직원으로 타슈켄트에 왔다. 5년간 갑을방적에서 일하다 2004년에 회사 정리 절차를 마무리하고 퇴사했다.

그는 공장 내 직원식당을 관리했다. 당시 주방에 일하고 있는 고려인이 5명이었는데, 방적공장이 문을 닫자 실직자가 되는 바람에 식당을 하게 됐다. 이들 가운데 현재 4명은 별세하거나 떠나고 1명이 남아 있다.

“직원이 15명이에요. 지난해 식당에 화재가 나 매우 힘들었지요. 처음 이곳에서 식당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식당은 5개밖에 없었는데 4배 이상 늘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에도 1개의 한국식당이 있습니다.”

그는 최근 금성인터네셔널이라고 하는 실 감는 공장을 인수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식당은 아내에게 맡기고 낮엔 공장 일을 돌본다. 이헌태 전 아리랑요양원 원장을 보자 무척 반가워했다.

“처음 아리랑요양원이 생겼을 때 종종 불고기 같은 음식을 어르신들에게 갖다드리고 봉사활동도 좀 했어요. 요즘엔 여유가 없어 잘 가질 못해요. 명절 때나 찾아뵙고 합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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