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구은행의 내일을 생각할 때다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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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9   |  발행일 2017-10-19 제34면   |  수정 2017-10-19
[취재수첩] 대구은행의 내일을 생각할 때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구 경제를 지탱하던 버팀목은 크게 건설·유통이었고, 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받쳐준 것은 금융이었다.

1982년 지방업체로선 처음으로 서울에 입성, 화제가 됐던 청구는 1997년 12월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갈 때까지 계열사 14개, 그룹 순위 35위의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우방주택으로 시작해 1990년대 우방랜드 등 10여 개의 기업을 산하에 둔 우방은 재계 순위 30위까지 성장했으나, 2000년 8월 최종 부도처리됐다.

유통업계도 한때 잘나갔다. 1944년 대구상회로 출발한 대구백화점은 1969년 주식회사로 덩치를 키웠다. 이후 신세계가 1973년 대구백화점 인근에 백화점을 오픈했지만, 4년 만에 문을 닫고 돌아갔다. ‘유통공룡’ 롯데도 수차례 대구 진출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2003년에야 롯데백화점 대구점으로 지역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그해 3월, 38년간 지역 토종 백화점의 자존심을 지켜왔던 화성산업<주> 동아백화점의 유통 부문이 이랜드그룹의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에 매각됐다. 지역 토종백화점인 대구백화점은 지난해 영업손실액 84억원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첫 적자를 기록한 이후 18년 만이다.

지역 경제를 유지하던 건설·유통·금융 중 제대로 살아 남은 것이 그나마 금융이다. 바로 대구은행으로 대표되는 DGB금융그룹이다. 그 수장인 박인규 회장 겸 은행장이 현직 신분으로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박 행장의 혐의는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해 수수료를 떼고 현금화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 일부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 전 박 행장은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였고, 경찰이 박 행장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 9월5일, 내사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 8월19일인 점을 고려하면 ‘경찰 소환=구속영장 신청’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박 행장은 경찰청을 걸어 나왔고, 대구은행으로 다시 출근했다. 대구 경제를 이끌던 3개 축 중 겨우 하나 제대로 살아 남아 있는 대구은행을 두 달 가량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수사 치고는 너무 부실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박 행장의 혐의가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다. 박 행장 이후에도 여전히 지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살아야 하는 대구은행 수장에 대한 수사라면 적어도 이렇게 산탄총을 쏘듯 수사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역경제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스나이퍼처럼 정확해야 하며, 뒷말이 나오지 않게 깔끔해야 한다.

박 행장도 ‘자연인 박인규’라면 무죄추정 원칙에 100% 동의하겠지만, 지역 금융계 수장이기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12월 정기인사를 통해 보복을 한다느니, 때문에 벌써 내부에선 편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사퇴 시기를 이미 수차례 놓쳤지만, 더 이상의 실기(失期)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구은행은 지역경제를 위해, 박 행장 이후에도 지금처럼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은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호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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