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페루 나스카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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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0   |  발행일 2017-10-20 제37면   |  수정 2017-10-20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地上畵 위를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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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전망대 앞의 나무와 손 모양의 지상화.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가 중간을 가로지르며 두 손을 펼치고 있는 사람 모양의 지상화를 두 동강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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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흔들고 있는 외계인 형상의 나스카 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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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동심원으로 말고 있는 원숭이 형상의 나스카 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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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 모양의 나스카 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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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치야 무덤의 미라.

신화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페루의 나스카는 수많은 미스터리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것은 바로 하늘 위에서만 볼 수 있다는 거대한 나스카 라인(Nazca Lines), 즉 나스카 지상화(地上畵)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왜 그렸는지 여전히 상상만 난무할 뿐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어서 더욱 미스터리한 지상화의 도시가 바로 나스카다.

해발고도 700m에 위치한 나스카는 리마 동남쪽 약 370㎞ 지점에 있다. 이 도시는 잉카 이전의 문명, 즉 프레 잉카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남미 고고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BC 100년 경에서 AD 800년 경까지 이어졌던 나스카 문명의 중심지다. 나스카 문명은 파라카스 문명에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스카 강 유역의 카와치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 유적은 우리의 흙벽돌과 비슷한 아도베로 만든 신전과 피라미드를 비롯해 광장을 중심으로 한 공공건물들, 관개용수로 등 수준 높은 과학 기술을 보여준다. 또 나스카 문명의 명성을 높인 것은 고도의 제작기술과 함께 섬세함과 상징적 모티프를 지닌 채문토기(彩文土器)다. 주전자와 접시, 주발 등에 고추, 옥수수, 감자, 사슴, 쥐, 개구리, 물고기 등 다양한 동식물 무늬가 새겨진 이 토기들은 제작 기술도 빼어나지만 예술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리마 동남쪽 370㎞의 해발 700m 도시
450㎢ 벌판에 800여 직선과 그림 300개
최대 370m 달하는 크기 등 다양한 형상
비 거의 오지 않아 2천여년 지나도 선명

경비행기 타고서야 만나는 외계인·벌새…
너무 선명해 찰나의 순간에도 경외감
고속도로변 높이 20m 전망대서도 감상
고대 차우치야 묘지 미라 미스터리 증폭

그러나 이러한 유적보다 더 관심을 받는 것은 지상화다. 내가 나스카에 들른 것도 순전히 나스카 지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스카의 지상화를 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두 개의 지상화를 볼 수 있는 나스카 전망대를 찾아가기도 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오전 7시 경비행기 투어를 예약했다. 이처럼 이른 시간에 경비행기를 타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해가 뜬 직후에 지상화가 가장 잘 보인다는 것이다. 또 안전과 관련되기도 한다. 한낮에는 햇볕을 받아 땅이 데워지면서 상승기류가 생기게 되고, 이 기류로 인해 경비행기가 지상화에 접근하기 위해 하강할 때 요동이 심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착한 나스카 공항은 한산했다. 우리 일행이 첫 팀이었다. 탑승수속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여권을 제시해야 했고, 좌우균형을 맞추기 위해 함께 탑승하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일일이 쟀다. 사고도 더러 있고 4인승 비행기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려 멀미가 심한 사람은 타지 않는 것이 좋다는 후기를 많이 봤던 터라 몸무게를 재는 과정부터 긴장이 되었다. 보안검색을 마치고 탑승을 위해 활주로로 나갔다. 그런데 내가 탑승할 비행기는 10인승이었고, 외관도 제법 멀쩡하여 적이 안심이 되었다. 탑승을 완료하고 기장의 쾌활하고 친근한 인사를 듣자 불안감은 사라지고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나스카 라인은 450㎢가 넘는 광대한 벌판에 800개가 넘는 직선과 300개에 달하는 그림들이 있다. 간단한 선과 기하학적 형상이 주를 이루지만 이 가운데 70여 점은 새, 물고기, 야마, 재규어, 원숭이 같은 동물이나 사람, 그리고 나무와 꽃 같은 식물을 형상화했다. 크기도 다양해서 큰 것은 370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가운데 경비행기를 타고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12개로 고래, 삼각형과 콤파스, 우주인, 원숭이, 개, 콘도르, 거미, 벌새, 왜가리, 앵무새, 나무 등이다. 현대인의 의식 안에서 형태를 보고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이므로 실제와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활주로를 벗어나 하늘로 오르자 이곳의 지형이 한눈에 드러났다. 나스카 지상화가 2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선명하게 유지된 이유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곳의 특별한 기후 때문이라고 했는데, 과연 물감을 기다리는 마른 캔버스처럼 평평하고 광활하였다. 이런 감상도 잠깐.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더니 기장이 다급하게 “Right side, Whale!”이라 소리쳤고, 고래의 모양을 찾으려고 신경을 쓰는 동안 다시 고도는 높아졌다. 이런 식으로 20분 가까운 곡예비행을 하고서 다시 활주로로 돌아왔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사실 제대로 본 것이 대 여섯 점밖에 되지 않았다. 암갈색의 평원 위에 새겨진 이 그림들은 자연이 빚어낸 수많은 다른 선에 섞여 있고, 심지어 고속도로 같은 인공 선들도 얽혀 있어서 시력이 좋은 사람들도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언덕에 선명하게 새겨진 외계인의 형상이나 벌새, 원숭이, 거미 등의 모습은 너무나 선명하여 찰나의 순간에서도 어떤 경외감마저 들었다.

나스카 라인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27년 페루의 고고학자 토리비오 메히아 세스페가 우연히 발견하여 39년 리마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보고하면서부터다. 그 후 40년 미국 롱아일랜드대학의 폴 코소크가 학문적 연구를 처음 시작한 이래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밝혀진 것은 없다. 별자리 기록이라는 설, 지하수의 흐름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 종교적 주술이리는 설 등이 제기되었지만 모두 추론에 머물렀다. 그러다보니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설도 끊임없이 나온다. 실제 하늘에서 보아야 형체를 알 수 있는 이 그림들을 어떻게 이처럼 정교하게 그렸는지 설명이 되지 않으므로 더욱 외계인 이야기가 숙지지 않는 것 같다. 거기에다 나스카 부근 무덤에서 발견된 직물을 조사해 본 결과 오늘날의 낙하산보다 더 정교한 소재임이 밝혀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에 비행 물체에 관한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천에는 하늘을 나는 사람들의 그림도 여럿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원주민의 말처럼 하늘을 나는 조인(鳥人)이 그린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변에 세워진 나스카 전망대도 들렀다. 20m 높이의 이 전망대에서는 70m 크기의 나무와 50m 크기의 손 모양의 지상화를 볼 수 있다. 이 전망대는 폴 코소크의 뒤를 이어 나스카 연구에 반생을 바친 독일의 여성 수학자 마리아 레이헤가 세웠다고 한다. 그녀는 페루정부가 추진하던 댐건설 사업 때문에 수몰될 위기의 나스카 라인을 지켜냈던 인물이었다. 자칫했으면 나스카의 수수께끼를 풀기도 전에 사라질 뻔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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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지상화의 감흥은 나스카의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고대 공동묘지인 차우치야 묘지로 이어졌다. 나스카 라인 북서쪽에 위치한 이 공동묘지는 앞서 언급한 토기와 직물이 출토되었을 뿐만 아니라 놀랍도록 생생한 미라로 특히 유명하다. 투어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묘지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먼저 생긴 미라 밀집지대라고 한다. 몇 기를 발굴하여 전시해놓았지만 그저 넓은 평원으로 보이는 벌판 전체가 지하 묘지란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뼈와 해골이 널려 있다. 발굴 전시하고 있는 지하묘지에는 형태가 거의 완벽한 미라와 소장품으로 보이는 토기, 직물 등이 매장 당시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아기로 추정되는 작은 미라와 표정까지 생생한 미라, 긴 머리카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미라 등 무덤마다 다양한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이한 점은 미라가 모두 앉은 채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라를 앉은 모습으로 만든 것은 어머니 뱃속의 태아 모양을 형상한 것이며, 동쪽을 바라보게 한 것은 뜨는 해처럼 다시 환생한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저 모습과 저 자세로 버틴 세월이 얼마였을까? 문득 유한한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이자 나약함의 징표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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