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영화 ‘대장 김창수’ 타이틀롤 조진웅

  • 윤용섭
  • |
  • 입력 2017-10-20   |  발행일 2017-10-20 제43면   |  수정 2017-10-23
“연기일 뿐인데도 무섭고 겁났다”
20171020

“나는 그날 짐승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다.” 1896년,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명성황후의 시해범을 맨손으로 때려 죽이고 스스로 잡혀 들어간 청년 김창수. 재판장에서 당당하게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 죄인이 아니라고 소리치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수감된다. 그는 바로 한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다. ‘대장 김창수’는 평범했던 한 청년이 위대한 리더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625일의 이야기다. 역사 속 위인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 아닌, 그 출발점에서의 모습을 재조명했다.

김창수를 연기한 조진웅이 “단지 연기일 뿐인데도 무섭고 겁이 났다”고 말한 이유다. 데뷔 이후 주로 강한 캐릭터를 도맡아왔음에도 이번에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실존했던 위대한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독립운동가 김구로 태어나기 전 외골수에 혈기만 왕성했던 청년의 생경함을 담아내야 한다는 점도 압박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딪쳐 보기로 했다. “이런 큰 인물을 만나서 그의 몫을 일부나마 살아보는 것은 결국 내 몫(운명)이다. 캐릭터와의 충돌이 너무 아프고 외로울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부딪쳐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초고 작업부터 조진웅만 생각했다”는 이원태 감독은 그의 캐스팅을 위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삼고초려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풍채는 물론 도전적이면서도 강인한 눈빛과 표정까지 실제 김창수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조진웅을 잡기 위해선 일견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그의 확신은 적중했다.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진짜 영혼이 이입된 김창수 그 자체였다”는 그의 말처럼 조진웅은 캐릭터와 딱 맞는 감성과 연기로 모든 과정을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 오직 조진웅이기에 가능했던 김창수는 그렇게 21세기에 현현했다.

20171020

▶실존 인물인 김구를 다뤘다. 전작들과는 캐릭터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확실히 달랐다. 워낙 잘 알려진 위대한 인물이다 보니 처음에는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일단 경건한 마음가짐부터 가졌다. 그리고 작품 분석과 자료 찾기 등 이제껏 해왔던 모든 과정에 더해 그분의 기개와 결단력 등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알려고 노력했다. 사실 다른 캐릭터들은 조금이라도 읽기 불편하면 포기하고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됐다. 규격화된 사이즈에 내가 몸을 맞춰 들어가야 했다. 조진웅이란 배우가 지금껏 살아온 성정이 있을 텐데 그런 부분도 많이 뜯어고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충돌도 많이 일어났다. 신기한 건 머리로는 절대 이해가 안 되고 못할 것 같은 영역이었는데 가슴속에선 이미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다.

“부담스러웠다. 도저히 김구 선생님의 성정을 쫓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시나리오를 읽으니 천하고 평범한 한 청년이 우리나라 구국의 초석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나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였고, 누구에게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부터 부담을 덜기로 했다. 그러나 인물에 동일시되기까지는 정말 힘들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나는 그분의 발자취를 재현해내는 광대일 뿐이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범접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이왕 할 거면 백분의 일이라도, 발가락의 끝이라도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부분이 상당히 난처하고 난감했지만 그냥 부딪쳤다. 그래서 그 현장에, 그 빗물에, 그 땅에, 그 흙에 좀 더 젖어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감당이 안 되었다. 나는 마흔이 넘었고 그 시절 김창수 나이의 곱절이다. 김창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을 텐데, 더 무서운 것도 많이 봤을 텐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 영화 속 상황을 마주하니 감당이 안 됐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그분은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피했다. 극 중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거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선생님의 그런 성정을 차츰 이해하고, 과연 나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를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면서 용기를 가졌다.”


한 청년이 민족 리더로 거듭나는 625일
실존인물 白凡 청년시절 연기라 압박감
풍채·눈빛·표정까지 완벽한 싱크로율
이원태 감독 “초고때부터 조진웅만 생각”

3년여 캐스팅 제안 고사하다 출연 결심
“김구 선생 성정 쫓아가지 못할까 부담
위인 사이즈에 내 몸 맞춰 들어가려 노력”
송승헌과 호흡 “악역 택한 용기에 박수”



▶영화는 김구 선생의 청년 때 모습을 다룬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발굴하는 재미도 있었을 듯하다.

“이 영화는 김창수가 대장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만약 가상의 인물이었다면 단순히 되게 고생하는 인물을 묘사해야겠구나라는 생각만 들었을 거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얘기는 누군가의 주도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만약 그 당시를 살았다면 우리 중 누군가도 그분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갔을 수도 있다. 그게 나에게는 중요했다. 나도 보통의 삶이 아닌,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고 거기에 걸맞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처럼 수용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김창수는 차츰 변화된다. 그렇게 보면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비록 조국의 선봉은 아닐지라도 옆사람에게는 최소한 히어로가 될 수 있다. 당신의 삶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거다. 김구가 위인이고 그의 위대한 업적만 알고 있지만 영화는 그 이면의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보여준다.”

▶작업과정은 어땠나.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타이밍이 없었던 작품이다. 오로지 직구로만 승부를 걸어야 했다. 내용을 조금이라도 바꾸면 왜곡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고, 그럴 바엔 정정당당하게 할 말은 하면서 가자고 했다. 타자에게 무조건 직구만 던질 테니 ‘알아서 쳐’라는 식이다. 그러니 계속 두드려 맞을 테고 실점도 많이 날 건 당연하다. 하지만 실점이 좀 나면 어떤가. 코미디, 액션, 스릴러 등 MSG(상업코드)가 엄청 들어간 영화들은 흔히 만나볼 수 있으니, 한 번쯤은 이런 의미심장하고 담백한 영화도 나와야 하지 않겠나. 물론 직구만을 던졌다는 것이 변명으로 들려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촬영이 끝나면 숙소에서 자주 술자리 겸 종례를 가졌다고 들었다.

“배우들 모두 가슴속에 뜨거운 태양이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촬영을 마치고 한 방에 모여 오늘 촬영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다듬고 내일 촬영을 준비하는 종례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의견을 참고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매일매일 행복했다. 동료 배우들과 함께하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모두들 어떻게든 작품에 도움이 되려고 서로의 것을 내려 놓으며 연기했다는 점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욕심부리고 채우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촬영이 계속되면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동료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 힘들어도 처음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유독 많이 느껴진다.

“동료들과 같이 이렇게 버티지 않으면 절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내가 그 구심점이 되어야겠다 싶었다. 처음으로 촬영을 하는 동안 집안행사를 포함한 개인적인 일들을 다 포기했다. 아내도 이해를 해주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가정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여기에 집중했다.”

▶송승헌이 악역인 인천 감옥소 소장으로 등장했다. 의외였다.

“그래서 고마웠다. 송승헌은 유명한 사람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영화나 브라운관에서 봐왔던 그야말로 잘생긴 연예인이다. 때문에 나도 의아하고 신기했다. 첫 미팅 때 내가 ‘왜 하려고 하느냐’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했을 정도다. 근데 따지고 보면 그가 악역을 선택한 건 내가 ‘명량’에서 와키자카를 연기한 것과 같은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때 나 스스로에게 엄청 칭찬을 해줬다.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다. 내가 좀 보수적이다. 그래서 왜장 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배신인 셈이다. 물론 배우가 연기를 하는 건데 아무런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나는 되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승헌씨에게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구 선생님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선택한 것에 대한 용기를 말이다.”

▶‘대장 김창수’가 지닌 의미와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김구 선생님의 묘가 용산 효창공원에 있다. 영화 촬영을 전후로 가끔 들렀는데 처음 방문할 땐 ‘내가 할아버지를 연기한 후손인데 자주 와서 귀찮게 할지 모르니까 잘 받아주세요’라고 어리광을 부렸다. 이처럼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나에게 큰 힘이 됐다. 그리고 개봉을 앞두고 최근 방문했을 때는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다. ‘앞으로 더 큰 시련과 어려움이 닥칠 텐데 당황하지 말고 당당히 헤쳐나가라’고. 그래서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당당하게 잘 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누가 보더라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느낌표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존재하는, 우리가 굳건히 이 땅에 서있을 수 있는 이유다. 그 뜨거운 기운을 관객들도 느껴보길 바란다. 분명 힘 있는 이 이야기가 힘 빠진 당신의 어깨를 쭉 세워줄 것이라고 믿는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키위컴퍼니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