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공연장의 정치인들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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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3   |  발행일 2017-10-23 제31면   |  수정 2017-10-23

가을 들어 대구경북지역 공원과 공연장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각종 문화 예술단체와 지자체가 주최하는 다채로운 공연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공연의 계절, 문화 예술의 계절이 왔다. 다양한 볼거리, 들을거리가 곳곳에서 풍성하게 펼쳐지고 있어 삭막한 마음에 여유를 주고 지친 심신을 치유해 준다. 이것이 문화예술 본연의 힘이 아닌가. 굳이 유명 연예인을 비싼 가격에 모셔오지 않아도 좋다. 대구경북지역에도 실력있는 문화 예술단체와 개인이 많으니 그분들의 기량을 감상하며 즐겨도 충분하다. 요즘은 각 기초자치단체마다 대부분 문화재단이 만들어져 있어 문화재단이 기획한 수준 높은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맛있는 꿀이 있는 꽃에 벌·나비가 모이고, 음식이 있는 곳에 파리가 꾀듯이 청중이 모이는 곳에는 그들의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모여든다. 행사장에 정치인들이 오는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들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회의원·시장·구청장·시의원·구의원·군의원들이 다들 지역주민에 대한 인사를 핑계로 마이크를 잡는다는 데 있다. 한국사람의 나쁜 버릇 중 하나는 마이크 잡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한번 잡았다 하면 잘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에서 그 지역 기초의원들까지 네댓명에서 많게는 예닐곱명까지 줄줄이 마이크를 잡고 일장연설을 해댄다. 자신이 어떤 예산을 확보해 어떤 실적을 올렸느니 하는 자화자찬 일색이다. 예술 공연을 즐기러 온 주민들은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참다 못한 청중들이 입을 비쭉거리며 행사장을 이탈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주민들이 세금낸 돈으로 문화행사가 열렸고, 그 주인들이 예술을 즐기려 하는데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해 초반부터 김을 빼 버리니 한심하다. 행사 주최 측은 사업 예산권을 쥐고 있는 정치인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정치인들은 무대 앞으로 나오지 말고 그냥 청중 속에서 가벼운 인사나 목례나 하고 말 일이다. 문화예술 행사장의 주인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청중이다. 정치인들은 이를 명심하고 행사장 분위기를 흐려서는 안된다. 표는 억지로 얻으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주민의 불편을 해소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할 정치인들이 주민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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