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미치광이’ 다루는 법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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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3   |  발행일 2017-10-23 제31면   |  수정 2017-10-23
[월요칼럼] ‘미치광이’ 다루는 법

내가 초등학생일 때 집엔 사나운 개가 있었다. ‘방범용’이었던 만큼 약간은 사나운 놈이 임무 수행(?)엔 적격일 수도 있다. 문제는 주인에게도 함부로 으르렁거렸다는 거다. 아주 성질이 더러운 놈이었다. 심하게 짖어댈 때는 광기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불손하고 막돼먹은 그놈에게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큰형이 삽으로 제압하면서다. 그 장면을 똑똑히 목도했다. 처음엔 거세게 달려들더니만 형이 큰 삽으로 몇 번 내려치니 금방 깨갱거렸다. ‘삽 훈육’의 효과는 컸다. 큰형 앞에선 유독 꼬리를 내렸고 다른 식구들에게도 전처럼 사납게 굴지 않았다.

요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이유는 순전히 김정은 때문이다. 김정은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다 그 개가 오버랩되는 건 둘이 판박이여서다. 푸짐한 살집, 잠재된 광기, 돌출 행동, 위아래를 모르는 불경 등이 아주 닮은꼴이다. 이런 김정은에겐 의외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이 먹힐 수도 있다. 트럼프의 “폭풍 전의 고요” “단 한 가지 방법만 통할 것” 같은 언어 사용이 미리 계산된 것이라면 김정은의 속성을 간파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의 카운터파트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1991년 한반도엔 잠시 ‘비핵’의 기류가 흘렀다. 미군 전술핵무기가 철수되고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다. 북한의 핵 야욕을 꺾겠다는 포석이었지만 저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1994년 미국과 핵 동결에 합의하고도 약속을 뒤집었다. 결과적으로 전술핵무기 철수는 남북 핵 불균형의 단초가 됐을 뿐이다. 북한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3대 세습의 왕조국가이자 불량국가, 깡패국가, 미치광이 정권이다. 교과서적 대응으론 판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다.

한비자는 군주의 통치방법으로 법(法)·세(勢)·술(術)을 제시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법, 사자의 힘, 여우의 지혜에 더해 간계(奸計)도 갖추라고 권고했다. 문 대통령은 법치에 기반한 민본의식, 약자를 보듬는 배려,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겸손을 갖췄지만, 간계·술수와는 거리가 멀다. 미치광이 김정은과 트럼프·시진핑·아베·푸틴 같은 4강 마초들을 상대하기엔 너무 나이브하고 신사적이다. 더 음흉하고 교활하고 터프해져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에 묘수는 없다. 지금으로선 고강도 제재와 압박이 최선이다. 다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고 미리 못 박는 건 하책(下策) 중 하책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다. 우리가 핵무장에 접근할수록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지렛대 효과는 커진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항상 군사력 불균형 구도에서 발발했다. 북한의 핵은 이미 자위(自衛) 단계를 넘어섰다. 한국과 미국·일본을 위협하는 파괴적 도구로 진화했다. 어쩌면 우리의 핵무장이 평화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책이며, 역설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지름길일 수 있다.

때론 ‘전략적 모호성’이 최상의 계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패를 너무 일찍 까발리는 경향이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성급했고,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언급도 행동반경을 좁히는 부메랑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반드시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가 빠졌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눈곱만큼도 없는 상황에선 뜬구름 잡는 얘기나 다름없다. 사실 김정은은 미치광이가 아니다. 영악하고 잔혹한 권력자다. 미치광이 놀음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알고 있다. 미국의 군사공격이 곧 ‘김씨 왕조’의 종언(終焉)이며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미군이 실제 공습을 감행하는 단계에선 김정은이 꼬리를 내릴 게 분명하다. 미국이 북한 공습을 위해 한국에 있는 20만명의 미국인을 소개(疏開)하면 그제야 북한은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다. 김정은의 폭주를 막으려면 ‘삽’을 들어야 한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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