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전생의 기억, 그리고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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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4 08:06  |  수정 2017-10-24 09:01  |  발행일 2017-10-24 제25면
20171024
정수경<성서공동체 FM 대표>

오랜만에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마음에 오오극장에서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봤다. 전생을 기억하는 9세 앙뚜는 린포체라는 좀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꼬마다. 린포체란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가의 고승을 의미하는 말로 살아있는 부처로 불린다. 9세 앙뚜는 티베트 캄의 고승이 환생한 꼬마다. 문제는 앙뚜가 태어난 곳은 인도 북부 라다크고, 앙뚜의 전생은 티베트의 시골마을이라는 것. 티베트는 중국의 통제가 심해 앙뚜의 제자가 올 수도 앙뚜가 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규칙에 의해 앙뚜는 라다크 사원에서 쫓겨난다.

“캄에 갈 수 없자 동네 사람들은 저를 가짜 린포체라고 놀리고 있어요. 전생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전 고민이 아주 많아요.” 나이가 들수록 전생의 기억이 사라지는 린포체의 운명으로 태어난 앙뚜. 그리고 그 린포체의 제자이자 린포체가 고승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경전과 심성을 가르치는 스승인 노승 우르갼은 티베트 캄에 갈 수는 없지만 볼 수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난다. 무려 3천㎞를 걸어서. 긴 여정의 끝자락 국경지역,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곳에서 우르갼은 앙뚜에게 소라피리를 건넨다. 갈 수는 없지만 소라피리 소리를 티베트의 제자들이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앙뚜는 눈발 속에서 진심을 다해 분다.

영화는 9세 린포체 앙뚜와 60년 차의 그의 스승 우르갼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히말라야의 눈과 이 두 사람이 입고 있는 붉은 승려복 색의 대비는 지독히 아름답고 슬프다. 호기심 많은 9세 꼬마 앙뚜의 장난스러운 표정과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스승 우르갼의 주름진 얼굴 위에 얹힌 웃음은 이 풍경과 함께 애잔하게 전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전생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9세 꼬마가 주어진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과 정치적 상황으로 갈 수 없는 전생의 고향을 향해 눈보라 치고 추운 긴 여정을 걷는 모습에서. 그리고 스승에게 자신이 나이가 들어 스승을 모실 걸 상상하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습과 긴 여정에서 잠시 푸른 초원에 앉아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라다크에 있는 가족이 즐겁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고 안심하는 표정에서 9세 고승의 진정한 모습이 보였다.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현생의 긴 고행을 기꺼이 감내하는 앙뚜의 모습을 보며 타고남이란 정말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의 전생은 어떤 모습이었고, 난 무얼 타고났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을날 자신에게 위로를 선물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감동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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