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대부분 세상 떠났고 정확한 증언이 가능한 후손도 거의 없어

  • 손선우,정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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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5 07:26  |  수정 2017-10-25 07:29  |  발행일 2017-10-25 제6면
사건 재구성 노력 뒤따라야

독도폭격사건이 벌어진 지 7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는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관련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생존자와 유족 등의 구술증언이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고 정확한 증언이 가능한 후손도 거의 없다.

1995년 6월과 7월 독도폭격사건의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푸른 울릉·독도가꾸기 모임’과 ‘한국외대 독도연구회’의 자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물인 ‘증언을 통해 본 1948년 독도폭격사건’이 유일한 증언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증언자료들은 사건 발생 당시의 기록 내용과 상당부분 어긋난다. 생존자들은 “30여 척의 동력선에 한 척당 5~8명이 승선했다. 150여명 숨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증언했다.

폭격 당시 전투기에서 기관총을 연달아 쏘는 ‘기총소사’ 여부도 미 공군의 발표와 배치된다. 미 공군은 B29 폭격기는 2만3천피트 상공에서 연습탄을 투척했기 때문에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생존자 정상열씨(당시 19세)는 “선장 김도암의 배에 구멍이 나서 나무로 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사건 발생 당시 기록과 미 공군의 발표, 생존자·유족들의 증언이 상충된다는 점은 독도폭격사건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울릉=정용태 기자 y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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