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왜, 트럼프에 목을 매는가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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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7   |  발행일 2017-10-27 제27면   |  수정 2017-10-27
[조정래 칼럼] 왜, 트럼프에 목을 매는가

신(新) 사대주의다. 트럼프가 한국에 머무는 게 1박2일이면 어떻고 2박3일이면 또 어떠하단 말인가. 우리의 영원한 보스(?)가 아베와 더 죽이 맞고 시진핑을 더 우대하니 애첩들을 투기하는 본처의 심정인가. 부화뇌동하기 잘 하는 종편 등 언론이 하도 찧고 까부니까 장삼이사들은 실제 그런가 어리둥절 미혹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쓸데없는 혼란의 도가니와 아우성에서 벗어나 곰곰 생각해 보면 볼수록 우리의 처지가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얼굴을 들 수 없고,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한다. 이보다 더 부끄럽고 창피할 수 없을 지경이다.

언론은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청와대와 문재인정부 깎아내리기 일색이다. ‘한국 홀대’ ‘외교 실패’ ‘외교안보 라인 책임 물어야’ ‘코리아 패싱’ 등 각양각색의 언사로 난타한다. 야권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한미관계 이상 징후, 외교의 한계 등은 점잖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나마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번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그 정도 체류하지 않았나”라고 말해 가장 사실에 근거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트럼프가 안 와도 ‘나라 체면’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안 대표를 직공하기도 했다.

팩트 체크도 거치지 않은 ‘아니면 말고’식 선정적 보도와 청와대의 해명에 이르기까지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되자 급기야는 일본 언론이 비꼬고 나섰다. 한국 언론과 국회의원 등이 ‘체류기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문재인 홀대론’을 강조하며 한국이 미국에 ‘냉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잖지 못하게 떠들고 있다고. 한국 언론의 보도를 잇따라 소개하며 이상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수준 이하로 ‘디스’했다. 우리 언론과 야권의 행태는 이런 쓴소리를 들어도 싸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일본의 조롱은 할복을 부추긴다.

어찌하여 일본 언론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 일본의 조소와 무시가 따갑다. 때리고 막말하는 미국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보다 한국을 비아냥거리고 미국에 아당 경쟁을 하는 일본, 이보다 더 미울 수가 있을까. 우리는 왜 자중지란으로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돼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하던 집안 싸움도 적들 앞에서는 멈추는 게 상례인데, 어쩌다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국제사회에 천둥벌거숭이처럼 벌거벗고 설치는 초라한 모습을 연출하게 됐는가.

‘반미, 그것 좀 하면 안되나.’ 노무현은 대통령 재직 당시 이렇게 말했다가 친미주의자들로부터 기관총 공격을 당한 바 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고 통치자이자 정치가로서 이같은 직설이 유효적절한 화법이 아닌 건 틀림없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인들 그 사실을 모르고 설화(舌禍)를 자초했겠나. 일부러 묻지마 친미들의 성역(?)을 건드려 봤던 것일 터이다. 반미들을 등에 업었던 그도 이라크 파병을 하는 등 미국의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반미들이 아무리 이상에 취해 떠들어봐도 친미들이 득세하는 나라다. 옴치고 뛸 수 없는 차꼬를 찬 사미국(思美國)이다. 굳이 ‘아름다운 완장’을 찬 사람들이 이렇게 설치지 않아도 친미 찬가는 차고도 넘친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제일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나 표방하는 구호는 다르지만 그 모두 미국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미국 프로야구 양대 리그 통합 챔피언을 가리는 결승전이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니고 왜 ‘월드시리즈’인지 의아하지 않은가. 세계 누구, 어느 국가로부터 승인이나 허락을 받거나 양해를 얻었는가. 참으로 이상한 월드시리즈이고, 그에 ‘미친’ 열광은 더욱 이상하다.

우리는 트럼프에 목매기보다 오히려 내부의 적들을 물리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모순 덩어리, 적폐는 바로 적전분열과 반대를 위한 반대, 고질적인 당쟁과 진영논리다. 온 나라에 퍼진 이 암세포들은 어느 특정 정권이 청산하려야 할 수 있는 적폐가 결코 아니다. 현실성도 실리도 없는 맹목적 친미 사대주의는 폐기해야 할 나쁜 유산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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