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강원 삼척 임원항 남화산 수로부인 헌화공원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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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7   |  발행일 2017-10-27 제36면   |  수정 2017-10-27
‘헌화가’ ‘해가’…설화 속 수로부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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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두드리며 해가를 부르는 사람들과 해룡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수로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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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산 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산 아랫자락이 매우 가파른 벼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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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가는 산길은 데크 계단과 마대포장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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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산 정상부의 헌화정. 주변에는 해학적인 모습의 십이지신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깃발을 든 사내가 길을 연다. 그 뒤로 칼을 쥔 무사가 주위를 경계하고, 그 뒤로 말에 올라탄 순정공(純貞公)이 허리를 세우고 앞길을 바라본다. 그 뒤를 병사들이 따르고, 그 뒤에 화려한 마차에 앉은 수로부인이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짐꾼과 시녀들이 뒤따른다.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길이다. 때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시절, 경주에서 강릉까지의 긴 행렬, 긴 노정이었다. 동해안의 7번 국도 옛길과 얼추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 길.

임원항 동방파제 뒤 고도 141m 남화산
꽃을 꺾어주려 노인이 기어올랐을 벼랑
지금은 엘리베이터로 눈 깜짝할 새 올라

구름다리 건너 산길 오르면 정상에 공원
해룡을 타고 돌아온 초대형 수로부인상
산마루 정자선 맑은 날 울릉도까지 보여


◆임원리 남화산

강원도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삼척의 남쪽 바닷가 임원에서 멈추었다. 천 길 바위산이 병풍같이 둘러선 아늑하고 풍광 좋은 마을이었다. 지금도 먼 강원도. 경주에서 삼척까지 500리가 넘으니 보름쯤 걸렸을까. 대구에서는 조금 더 멀지만 작심하고 달리면 서너 시간 내에 닿고, 작은 어촌의 활기와 갯것들의 비린내가 대둔근의 통증을 잊게 한다. 조선시대 임원에는 여행자들의 숙소인 만년원(萬年院)이 있었다 한다. 그래서 ‘원(院)과 가까운 마을’이라는 뜻의 임원리(臨院里)다. 투기를 모르는 땅의 쓰임은 대개 계승되는 법이니, 순정공 일행의 ‘임원에서 점심’은 미리 계획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날 좋은 5월이었을 게다. 수로부인은 문득 벼랑 위에 피어난 철쭉꽃을 보게 된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느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젓는다. “사람이 올라갈 데가 못 됩니다.” 그때 암소를 끌고 곁을 지나던 노인이 벼랑을 기어올라 꽃을 꺾어 주며 노래한다. “자줏빛 바위 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이 노래가 ‘헌화가(獻花歌)’다.

꽃 피어있던 천 길 바위산이 임원리의 남화산(南華山)이라 한다. 빨간 등대가 있는 임원항 동방파제 뒤쪽에 오뚝 솟은 고도 141m의 산이다. 옛날에는 임원산(臨院山)이라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남화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산의 아랫자락이 매우 가파르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산은 버려졌을까 무뎌졌을까. 천 길 높이는 아니어도 꽤나 날카롭게 깎아지른 벼랑이다. 바위 절벽은 그물에 감싸여 있다. 옛날 노인은 저 위험스러운 절벽을 기어올랐을 테지. 지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오른다. 길게 뻗어나간 방파제와 시퍼런 바다가 테트라포드를 희롱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단숨에.

◆수로부인 헌화공원

엘리베이터에서 자줏빛 구름다리를 건너면 남화산 중턱이다. 정상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다. 산의 동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조금씩 오르는데 절반은 계단, 절반은 마대포장길 혹은 고무 카펫길이다. 무리 지은 날씬한 대나무들이 해풍에 나긋나긋 고개를 흔들고 이따금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가 열린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노랑 강아지와 작은 연지(蓮池)를 지난다. 근래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무덤도 지나고 한들한들 그 예쁜 얼굴을 부끄럼 없이 자랑하는 코스모스 무리도 지난다. 그러면 저 산마루 흘러내린 곶의 가장자리에 수로부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부인은 해룡의 등허리에 사뿐히 앉아 있다.

남화산 정상부는 수로부인 헌화공원이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수로부인조’에 실려 있는 두 이야기를 모티브로 조성됐다. 남화산은 ‘헌화가’의 무대라지만 공원은 또 다른 이야기인 ‘해가사(海歌詞)’를 보다 중점적으로 형상화해 놓았다. 순정공 일행이 임원을 떠난 이틀 뒤 삼척의 북쪽인 증산 바다에 도착했을 때 수로부인은 용에게 납치된다. 이에 백성들을 모아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용이 부인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다. 그때 부른 노래가 ‘해가(海歌)’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그 얼마나 큰 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 먹으리라.”

해룡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온 수로부인 상은 공원의 상징이다. 천연오색 대리석으로 조각된 상은 높이 10m가 넘는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막대로 땅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장군도 병사도, 밭 갈던 농부와 고기 잡던 어부와 물질하던 해녀도, 마을의 아낙과 청년과 소녀도, 지나가던 당나라 상인과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선(神仙)조차도 모두 쿵쿵 땅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수로부인이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들 곁으로 몇 송이 해당화가 열매와 함께 피어있고, 연보랏빛 송엽국이 낮게 숨죽여 피어나 있다.

산마루에는 헌화정 정자가 쉼터이자 전망대로 자리한다. 정자 서쪽에는 해돋이 터널, 소망의 탑, 바람의 창 등의 조형물이 산책로와 함께 어우러져 있고 등대 모양의 화장실이 있다. 정자의 동쪽에는 바다와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 휴(休)’가 있다. 지난 7월에 준공된 카페는 노인행복일자리사업으로 운영되는데 삼척시청에 1호가 있고 이곳은 2호다. 이곳에서 울릉도까지 거리는 약 137㎞, 동해상에서 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지점이라 한다. 날이 극도로 맑거나 3대가 덕을 쌓으면 육안으로도 울릉도를 볼 수 있단다. 보이지 않는다. 야외 전망대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임원항

장대한 바다와 임원항의 긴 방파제는 보인다. 저기 좁고 긴 모래사장은 임원해수욕장이고 저 멀리 보이는 원통형 구조물은 호산항 LNG생산기지다. 7번 국도가 미끈하게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엘리베이터 앞 구름다리에서는 임원항이 한눈이다. 회 센터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임원항은 회가 유명하고 방파제는 돔 낚시터로 이름나 있다. 원래는 시멘트 적출이 주 기능인 항구였고 탄광산업이 발달했을 적에는 광부들이 많이 살았다 한다.

임원의 어부들은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사발에 가득 부은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여자들은 칼을 들고 나가 오징어 할복이나 회 썰기로 돈을 벌었다. 어부들이 술을 마시는 동안, 어부의 아내는 칼을 쥐었고 그러다 집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녀들은 다시 돌아오기도 했고, 영영 떠나기도 했다. 어부들은 몰랐을까, 헌화의 힘을. 회 센터 골목길을 한 사내가 뒤척뒤척 걷는다. 임원의 어부인지 이방인인지는 알지 못한다. 어쩐지 그의 손에 꽃을 들려주고 싶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가거나 중앙고속도로 안동분기점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영덕IC에 내려 7번 국도를 타고 북향한다. 울진 고포 지나 약 10㎞ 더 가면 임원항이다. 수로부인헌화공원 관람시간은 동절기(11∼2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정기휴무일은 매월 18일(18일이 휴일인 경우 그다음 평일)이다. 입장객의 경우 남화산 엘리베이터 앞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 임원항 회 센터 주차장에 주차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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