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지방분권의 敵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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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30   |  발행일 2017-10-30 제31면   |  수정 2017-10-30
[월요칼럼] 지방분권의 敵
허석윤 논설위원

지방분권공화국! 지방분권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설렐 만한 미래다. 과연 가능할까? 누구보다 대통령이 총대를 메고 앞장서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지방분권 로드맵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날이 (국민 대다수가 모르긴 해도) ‘지방자치의 날’이었던 만큼 지방에 큼지막한 선물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을 재차 천명했다. 이를 위해 입법·행정·재정·복지를 아우르는 4대 지방자치권을 헌법화하는 지방분권 개헌을 흔들림없이 추진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수차례 지방분권을 강조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한 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지방분권 로드맵에 적시한 5대 분야 30개 추진과제 내용이 고무적이다. 지방의 요구가 많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 △제2국무회의 제도화 △지자체의 지방정부 명칭 변경 △국세-지방세 비율 7대 3(장기 6대 4)으로 조정 △중앙권한 ‘지방이양일괄법’ 내년부터 단계적 제정 △주민투표 확대, 주민소환 요건 완하 등은 온전한 지방자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적 장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가 강력하게 지방분권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이젠 다 된 밥일까. 낙관하기엔 이르다. 지금은 밥솥만 준비됐을 뿐 쌀은 안치지도 않은 상태다. 그리고 제대로 밥상을 차리는 일은 더욱 녹록지 않을 것이다. 지방분권의 적(敵)들은 여전히 많고 건재하다. 중앙권력과 수도권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세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알다시피 이들은 국가를 움직이는 실세들이다. 정치·행정·경제·교육·언론·문화 등 모든 분야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간에는 아마도 대한민국을 ‘서울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암묵적인 카르텔이 형성돼 있을 듯싶다. 물론 그 중심에는 보수 정치권이 있을 터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지방분권에 딴죽을 걸고 나섰다.

얼마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뜬금없이 개헌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도 대선 후보 시절에는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꾼 것이다. 어차피 낙선했으니 공약은 안지켜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개헌 연기론의 명분조차 궁색하다. 홍 대표는 통일시대를 대비한 전면개헌을 위해 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진짜 속셈이 따로 있음은 불문가지다. 내년 개헌을 원하는 대다수 국민의 눈에는 지방선거 유불리를 따진 정치적 셈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홍 대표가 계속 몽니를 부릴 경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한국당이 개헌 연기를 당론으로 채택한다면 개헌은 정치공방으로 변질돼 모처럼 호기를 맞은 지방분권도 동력을 잃게 된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한국당의 정체성과 지향점이 보수인지 수구인지.

지방분권의 걸림돌이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방 정치권이 더 문제다. 요즘 들어 전국의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하나같이 지방분권을 부르짖고 있지만 과연 그들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만한 철학과 역량, 도덕성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함량미달인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각종 비리와 추문이 끊이지 않는 일부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일탈에 한숨만 나온다. 그들의 존재이유를 묻고 싶다. 지역민에 대한 봉사는 고사하고 지역민 얼굴에 먹칠하는 낯 뜨거운 ‘사고’라도 안 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방 정치권이 이 모양인 게 우연일 리 없다. 민의는 외면한 채 오로지 권력만 좇는 ‘4류 정치’의 당연한 결과다. 지방분권은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시대적 소명이지만 결코 제도만으로는 구현될 수 없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주체가 돼야 할 지방 정치권이 되레 지방분권의 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방 정치권의 처절한 자기 반성과 혁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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