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인문학과 철학이 살아 숨쉬는 구미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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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31   |  발행일 2017-10-31 제30면   |  수정 2017-10-31
인구 절반 22만명이 참여한
국내 첫 한 책 하나 구미운동
새로운 독서문화 운동 일환
금오전국시낭송대회도 개최
구미의 인문학이 살아숨쉰다
[화요진단] 인문학과 철학이 살아 숨쉬는 구미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구미에서 네 번째 가을을 맞고 있다. 숙소 창문 커튼을 걷으면 금오산 도립공원 전경이 눈앞에 다가온다. 운무가 춤추는 여름날의 자태, 만산홍엽으로 단장한 가을 모습, 흰 눈을 머리에 인 채로 서너 달을 버티다가 봄을 맞는다. 금오산은 바로 구미의 상징이다.

구미는 축복받은 도시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덕에 가뭄 걱정은 기우다. 태풍이나 수해로 인한 피해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조성된 조경 또한 멋지다. 금오산 올레길에는 자정이 한참 지나도 혼자 산책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광활한 낙동강 양안에는 각종 체육시설이 즐비하다. 대구의 스포츠 마니아들도 부러워할 정도다. 도심 곳곳에 쌈지공원이 있다. 도심에서 승용차로 10분이면 산과 강에 다다를 수 있다. 한마디로 도시 전체가 잘 가꿔진 커다란 공원이다. 10여 년 동안 1천만 그루 나무심기운동도 한몫했다.

구미에서 접한 첫인상은 바로 시민의 밝은 미소였다. 대구에서는 좀처럼 못 보던 광경이었다. 시민 평균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고 실업률이 낮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해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을 이처럼 웃게 만드는 또 다른 동인(動因)은 전자산업의 메카인 회색도시에 인문학과 철학을 입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10년 전 선거공약으로 문화시장이 되겠다고 했던 남유진 구미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한 책 하나 구미운동’을 들고 나왔다. ‘전자산업도시에 웬 생뚱맞은 운동을 벌이나’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올해의 책 선정과 시상에는 인구 43만명의 절반인 22만명이 참여했다. 범시민독서운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남 시장은 더 나아가 국가산업도시 구미의 12만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범시민 독서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 5월 50개 기업체와 독서 관련 협약을 맺었다. 자체 도서관이 없는 기업에 2년 동안 움직이는 도서관을 파견하는 ‘릴레이 서가운동’이 주된 내용이다.

남 시장은 7년 전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수필가로 등단했다. 기자가 남 시장에게 대학에서 법학이나 경제학 대신 하필이면 철학을 전공한 연유를 비틀어 물은 적이 있었다. “대학 때는 몰랐지만 철학을 배웠다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질문 의도와 다른 다소 빗나간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에는 행정에 철학과 인문학을 입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늘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애플”이라고 설파한 스티브 잡스를 인용한다. 이렇게 해야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 책 하나 구미운동’의 결실은 새로운 독서문화운동의 일환인 ‘금오전국시낭송대회’로 이어지고 있다. 남 시장이 손수 만들었다. 지난해 열린 첫 대회에선 신달자 시인과 곽재구 시인이 읊어내는 주옥같은 자작시 낭송에 이어, 남 시장도 오케스트라 배경음악에 맞춰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낭송했다. 올해는 미당 선생의 ‘푸르른 날’을 낭송하다가 가수 송창식씨 버전으로 즉석에서 무반주 독창을 해 관람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 책 하나 구미운동’은 국내에선 최초다. 이는 국가적인 정책으로 옮겨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값어치가 있다. 43만 인구 대비 도서관 열람석 수 전국 1위에다 장서보유량도 전국 2위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20여 개의 독서회에 400여 명이 독서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행정이나 정치는 물론 매사에 간절함과 열정, 끈기를 갖고 실천하면 좋은 결실을 거둔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7㎡의 공간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책을 읽는 작은 도서관인 ‘스토리 팟’이 올해 구미 곳곳에 설치됐다. 캐나다 뉴마켓시의 야외독서공간을 본따 만들었으며 국내 최초란다. 만추(晩秋)가 이어지는 이번 주말,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비견되는 금오지를 찾아야겠다. 그곳에 있는 스토리 팟에서 떠나간 님을 생각하며 쓴 조지훈 선생의 ‘사모(思慕)’와 가을에 느끼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표한 릴케의 ‘가을날’을 꼭 낭송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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