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적폐와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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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1   |  발행일 2017-11-01 제31면   |  수정 2017-11-01
20171101

근자에 여권 정치인들의 입이나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말 중 하나가 적폐청산일 것이다. 적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고 되어 있다. 폐단이라면 범죄도 있을 것이고 범죄에는 미치지 아니하나 도덕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잘못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금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적폐는 거의 범죄행위를 말하는 것 같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블랙리스트 작성 등은 업무방해죄나 직권남용죄로 형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이것을 두루뭉술하게 적폐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고 솔직하게 범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이러한 것들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범죄라고 한다면 사정당국에서 진작 알았을 것인데 어떻게 오랜 기간의 범죄가 그동안 처벌받지 않고 정권이 바뀌니까 이제야 문제가 되는지 참으로 이상하다.

적폐 중에서 도덕적인 적폐는 사정당국이 아니라 정치권이나 국민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므로, 정권이 바뀌어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간다. 즉, 금전적인 대가나 강압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여당의 당직자나 비례대표 예비후보가 능력과 무관하게 전리품처럼 공공기관의 장이나 직원으로 특별 채용되는 것은 범죄는 아닐 것이고 도덕적 관점이나 페어플레이라는 관점에서 허용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정권의 적폐는 다음 정권에서 바로잡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적폐까지 과거 정권에서 묵인되다가 정권이 바뀌니까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이 세금을 내서 사정기관을 두는데 과연 그들은 범죄행위가 행해지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수사권을 가진 사정기관들이 정권에 따라서 태도를 달리하니 정치 검찰이니 청탁 수사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결국 사정기관들은 집권세력의 범죄 행위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가 정권이 바뀌면 이를 과거 정권이 범한 범죄라고 날이 시퍼런 칼을 꺼내드는데 이러한 일이 반복되니 정당한 법집행조차도 정치보복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본의 도쿄지방검찰청 특수부는 정권의 눈치를 안 보고 인정사정없이 정치권의 비리를 파헤치기로 유명하다. 자민당이 영원히 집권할 것 같은 1970년대 당시 집권당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도쿄지검 특수부에서 수사 받고 처벌되었다. 일본 국민들은 총리의 말은 안 믿어도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의 수사는 믿는다. 우리나라도 검찰이나 경찰이 이렇게 살아 있었다면 박근혜 정권의 비리라고 주장되는 것들이 예방되거나 초기에 발본색원되어 탄핵이라든가 임기 도중 갑자기 정권이 바뀌어 국정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범죄라는 적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지만 그 시기가 중요한 것이다. 얼마 전에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영학이 자신의 딸 친구를 살해한 사건을 보면 경찰이 미리 실종신고를 받고 제대로 처리했다면 소녀의 아까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그 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영학은 잡았지만 소녀의 생명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었다. 검찰이 박근혜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 그 잘못에 제대로 메스를 들이댔다면 우리가 작년 가을부터 올 5월까지 겪었던 혼란이나 사회경제적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야당 시절에는 사정기관의 독립을 외치지만 여당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 척한다. 오비이락인지는 모르지만 전 정권에서 야당 인사들을 수사하던 검찰이 갑자기 야당이 된 전 정권 사람들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보고 누가 검찰이 독립적이라고 믿을 것인가. 적폐는 반드시 청산해야 하지만 적폐청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폐가 발생했을 때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청산하라는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친 적폐청산은 보복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면 또다시 정권이 바뀌었을 때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 보복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보복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적폐는 청산되어야 하나 그 절차는 사심 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상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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