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공단 “공무상 부상 스스로 증명하라”…좌절하는 소방관들

  • 최보규
  • |
  • 입력 2017-11-09 07:47  |  수정 2017-11-09 07:47  |  발행일 2017-11-09 제14면
오늘은 소방의 날…공무상 요양신청 사각지대
20171109
시·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소방관들. 위험 요소가 많은 현장의 특성상 전체 공무상요양 신청자 10명 중 1명꼴로 소방관이지만 진료비 및 치료비 등을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되풀이되고 있다.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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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모 소방공무원이 공무상요양 승인 신청을 한 뒤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결정서. 결정 구분에 ‘불승인’이라 돼 있다. 해당 소방관이 공단에 전화해 불승인 사유에 대해 묻자 그들은 “퇴행성 요인이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오늘은 제55주년 소방의 날이다. 시·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 제 몸을 불사르는 현장의 소방공무원. 그들의 생활은 항상 위험 요소와 맞닿아 있다. 부상당한 사람을 실어나르고 무거운 장비를 멘 채 뛰어다니는 게 일과인 소방공무원들은 다른 공무직종에 비해 다칠 일도 많다. 공무상요양 신청은 그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를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공무원연금공단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공무상 얻게 된 질병 또는 상해는 국가의 도움으로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 공무상요양 신청제도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경우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허리 치료에 1천만원 쓴 소방관
증명서류 50여장 모아 요양신청
연금공단 “퇴행성 질환” 불승인
반년동안 진료한 의사 소견에도
공무상 요양 승인받기 어려워

2013∼2015년 현장근무 소방관
한 번 이상 부상 겪은 비율 19%
그중 80%가 “자비로 치료했다”


◆경북 박모 소방관의 소방일기

지난해 4월29일, 박 소방관은 건축 현장을 감독하던 중 바닥에 널브러진 건축자재를 잘못 밟아 넘어졌다. 일어나려 애썼지만 허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살짝 넘어졌을 뿐인데 이렇게 아플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5년 전 여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2011년 여름 새벽 2시쯤 집에서 잠을 자던 40대 후반의 박 소방관은 후배 소방관으로부터 긴급호출을 받고 화재가 난 경북의 모 섬유공장 현장으로 출동했다. 섬유가 타면서 내는 연소물질로 시야가 가려 화재 진압조차 쉽지 않던 상황. 20㎏에 육박하는 공기호흡기와 몸 곳곳에 달린 개인장비들이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큰불을 잡고 잠시 쉬기 위해 1~2m 높이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뛰어내린 순간 어깨에 메고 있던 공기호흡기 무게에 눌려 허리가 ‘삐걱’하는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선 큰 통증이 왔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사그라졌다. 하지만 2주가량 지나도록 통증은 계속해 비주기적으로 찾아왔고 오른쪽 다리로까지 퍼져나갔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척추전방전위증’. 공무상요양 신청을 해 치료비를 지원받고 싶었지만 소방서 평가점수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말도 못 했다. 빠진 자리를 바쁘게 채울 후배들 생각에 충분히 쉬지도 못한 채 그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허리를 다쳐 못 쓰게 되자 주저없이 공무상요양 신청을 했다. 5년 전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 함께 일했던 소방관들을 찾아다니며 목격담 작성을 요청했다. 진료 기록을 떼기 위해 서울을 포함한 각 지역 병원도 오갔다. 힘들게 마련한 서류를 모아보니 50여 장.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돌아온 건 ‘퇴행성으로 인한 질환이니 공무상요양 신청을 불승인’한다는 답변이었다. 나이가 들어 자연히 허리가 약해졌다는 의미였다. 1·2차 부상을 거치며 허리 치료에 쓴 돈만 1천여만원. 하지만 돈보다 더 큰 생채기가 마음속에 남았다. ‘소방생활 20년 동안 도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열심히 지켰지만 정작 내 몸을 지켜줄 국가는 없다는 것’.

◆소방관이 직접 입증…“까다로워”

공무상요양제도는 공무원이 공무수행과 관련,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을 진료·치료할 때 그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전해 주는 제도다. 공무상요양이 인정되면 해당 공무원은 진료비, 약제비, 치료비, 재활훈련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갖춰야 되는 신청서류만 6~7가지. 공무상요양 승인신청서, 상병경위조사서, 진단서 원본, 최초 내원 병원의 의무기록지 등에 더해 재해의 유형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추가로 준비해야 된다. 이밖에 공무상 부상임을 입증할 수 있는 근무일지, 출장명령부 등도 필요하다.

서류 절차 중 공무상 부상을 입증하는 건 가장 까다로운 작업으로 꼽힌다. 비전문의료인인 소방관이 자신의 질병 혹은 상해가 공무상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증명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직접적인 상해를 입는 경우가 아니라면 연관성을 밝히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 사례처럼 박모 소방관이 5년 전 그날을 증명하기 위해 함께 근무했던 소방관들을 찾아 목격담을 정리한 것도 같은 이유다.

비슷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구 북부소방서에 근무하는 김모 소방관도 공무 연관성 입증 때문에 공무상요양 신청이 좌절됐다. 2010년 1월 대구 달서구에 소재한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했던 김 소방관은 3.7m 높이의 사다리가 뒤집어지면서 땅으로 추락했다. 부러진 왼쪽 넓적다리뼈는 공무상요양비를 지원받아 치료하면서 점차 호전됐지만 두어 달이 지나자 다른 부위들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오른팔을 들 수 없다는 것. 그는 피로 누적 때문이라 생각하고 반년간 치료를 했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MRI 촬영 결과 목디스크라는 진단이 나왔다. 40대 중반에도 건강하던 김 소방관은 갑자기 찾아온 목디스크가 이상해 의사에게 추락사고를 설명했고, 의사는 “2010년 낙상이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진단서에 의사의 소견과 추정 원인도 써넣은 뒤 공무상요양 신청을 했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퇴행성이라 불승인한다’는 결과를 전했다.

김 소방관은 “반년 동안 나를 진료하고 치료한 의사의 설명도 무용지물인데, 비의료인인 우리가 어떻게 인과를 입증하겠나. 소방관은 누가 봐도 몸 쓰는 일을 자주 또 심하게 하는데 원인이 직접적이지 않다고 해서 퇴행성이라고 결정짓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한편 2015년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전국 소방공무원 627명을 대상으로 ‘소방공무원 근무여건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3~2015년 현장근무 중 한 번 이상 부상을 당한 소방관은 약 19%인 12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치료비를 본인 부담으로 처리했다고 답한 소방관이 99명(80%)에 달했는데, 그중 65명(52%)이 “신고 절차가 복잡하거나 공상처리 신청 가능 부상의 기준이 없다”고 답했다. 21명(17%)은 “행정평가상의 불이익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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