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섬에 간 동인동 찜갈비…감귤·흑돼지 요리로 거듭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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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34면   |  수정 2017-11-10
■ 푸드로드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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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동 찜갈비에 감귤향을 가미한 제주해물돼지찜 돈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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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복자성당 최초 감귤나무 <서귀포시 제공>

제주도만의 농업·식문화가 있다. 제주도에는 홍시가 낯설다. 감나무가 있지만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파라시(팔월의 시퍼런 풋감)를 따서 제주의 대표옷인 갈중이(갈옷) 염색할 때 재료로 활용했다. 습기가 워낙 강해 다른 옷은 짓물러 오래 입지 못한다. 그런데 감물을 들이면 옷이 엄청 질기고 방습효과도 탁월했다. 그들은 옷은 물론 어망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풋감물을 들였다. 가수 은희씨가 일찌감치 제주도로 들어와 제주갈옷 전국화에 앞장선 바 있다.

제주도에는 고춧가루 문화가 일천하다. 매운맛이 깃들기 힘들다. 대체적으로 심심한 맛이다. 고추농사를 지어도 풋고추를 선호한다. 이유가 있다. 기후 때문이다. 태양초로 갈무리하고 싶어도 너무 습해서 할 수가 없다. 말린 고추 상태로 광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 돌절구에 빻아서 사용한다. 그래서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김치, 대구식 육개장이나 동인동찜갈비 같은 건 구경할 수가 없다. 소금도 귀했다. 필요하면 해수를 이용했다.

대방어가 잡힐 즈음이면 귤천지인 제주
1902년 첫 감귤나무가 시험재배된 이후
최근 한라봉·천혜향 등 신품종도 수두룩

2014년 섬에 정착한 ‘대구 사람’ 김창민
한라봉 이용 제주식 동인동 찜갈비 개발
돼지고기로 토박이 입맛 잡고 전복 가미
건고추·소금 귀해 슴슴한 제주맛에 방점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김장문화도 무용지물. 자연 쌈채용 배추가 활성화됐다. 김장용 결구배추는 없고 잎이 퍼진 얼갈이배추가 주종이었다.

제주도는 밭천지다. 논은 거의 없다. 전체 면적의 1.3%가 논인데 서귀포 하돈, 종달리 등 일부 지역에서 ‘밭벼’를 재배한다.

제주도 관광문화는 1979~80년부터 형성된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한라산 종단 5·16도로, 전두환 대통령 때는 중문단지가 개발된다. 그 이전에는 관광객을 볼 수 없었다. 신혼부부도 거기로 오지 않고 해운대 등지로 갔다. 그런데 서귀포시에 서귀포칼호텔, 파라다이스호텔, 하얏트 등 3대 호텔이 들어서면서 신혼부부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어 옥돔이 제주 최고의 선물로 급부상한다. 기생관광을 온 일본인 때문이었다. 특히 오사카 등 간사이 지방에서 온 일본인은 옥돔을 선물로 많이 사갖고 갔다. 하지만 제주공항에는 이렇다할 만한 관광물품 판매점이 없었다. 88년에야 론칭된다. 90년대는 감귤, 백년초 초콜릿, 2010년대에는 오메기떡이 최고의 선물로 떠오른다.

◆제주 감귤인문학

마라도 인근 해역에서 대방어가 잡히기 시작하면 제주도의 겨울이 시작된다. 감귤의 고장 서귀포시, 한국에서 가장 많은 감귤 농장이 밀집해 있는 효돈 등지의 가판대는 귤천지로 돌변한다. 날이 추워도 가로수 같은 감귤나무를 보면 한결 맘이 훈훈해진다. 감귤을 먹을 때면 항상 밀감과의 차이점이 뭔지 어원이 궁금해진다.

감귤, 밀감, 귤. 어느 게 표준말일까. 정답은 ‘감귤(柑橘)’. 통상적으로 노지에서 자라는 감귤은 ‘온주귤’(일명 온주밀감)로 불린다. 상당수 감귤 농장주도 ‘온주’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온주는 바로 감귤의 원산지가 중국임을 암시하는 지명. 감귤의 발상지로 불리는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를 의미한다. 이게 17세기에는 미대륙으로 넘어가 ‘만다린(Mandarin)’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원예학자들은 비슷한 명칭인 탠저린(Tangerin) 등을 포함해 감귤, 오렌지, 자몽, 멜론 등 과즙이 풍부한 과일을 통칭해 ‘시트러스(Citrus)’라 한다. 이 감귤이 일본을 거쳐 제주도로 들어왔단다. 일본에선 감귤이라 하지 않고 ‘밀감’이라 한다. 일본말로는 ‘미캉(蜜柑)’이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미캉이 익숙하다. 감귤보다 작고 껍질째 먹는 금귤(金橘)은 일본말로 ‘긴캉(金柑)’이다.

제주도 최초의 감귤나무가 있는 곳은 서귀포시 서홍동이다. 현재 복자성당에 가장 오래된 감귤나무가 있다. 1902년 이 성당에 근무하던 엄다께 신부가 14그루를 기증받아 시험재배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 서귀포시 서홍동 출신 김진려가 일본 구마모토에서 접목 강습을 받고 온주밀감과 워싱턴 네이블을 가지고 와서 식재했다. 하지만 최초로 큰 농장으로 개설된 건 서귀시 서홍동에서 일본인 미네가 개원한 현재의 ‘제주농원’. 1913년에 2년생 묘목을 도입, 식재하였다. 그때 심은 고목이 일부 남아 수확을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지금과 같은 감귤원은 별로 없었다. 과거로부터 꾸준하게 존재해온 재래종 감귤들이 그 명맥을 유지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산물, 동정귤, 금귤, 유자, 당유자 등 나름 다양성을 유지했다.

제주도에 감귤신드롬이 일기 시작한 건 70년대 이후이다. 특히 김종필 총리가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이후 제주에 직접 토지를 매입하여 일본의 온주밀감을 서귀포 일대에 퍼뜨렸다는 후문도 들린다.

2016년 겨울부터 산지 전자경매도 실시된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택배 배송 받는 소량을 제외하면 덜 익은 감귤이 유통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덜 익은 미숙과를 카바이트로 숙성, 착색시키는 일은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농협 등을 통해 계통출하되는 감귤은 믿고 먹어도 된다. 다만 해마다 감귤의 당도가 높아져서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10~12브릭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하기 쉽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구입하면 상관없지만 택배로 주문할 시에는 주말을 끼고 주문하면 사나흘 만에도 상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주초에 주문하는 것이 좋다.

근래 들어서는 한라봉 황금봉 천혜향 진지향 레드향 청견 등 새로운 품종이 나왔다. 모두 접목을 통해 감귤과 오렌지 등의 좋은 특성을 합작시켜 개발한 감귤류다. 현재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가 감귤에 대한 소소한 정보거리를 공급해주고 있다. 한때 감귤은 오직 제주도뿐이라고 여겼는데 이젠 육지에서도 비닐하우스에 많이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노지 감귤은 오직 제주도밖에 없다.

감귤은 대학나무로 일컬어지기도 했으나 이젠 아니다. 90년대 중후반까지만 ‘금감귤’이었다. 99년 3천200억원대로 조수입이 급전직하한 이래 2000년 3천700억원, 지난해 3천600억원대로 최고시세의 절반대로 추락하고 있다.

◆감귤 품은 대구식 찜요리

수성구 들안길에서 금산삼계탕 시대를 연 김창민 사장. 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2014년 3월 그가 갑자기 탈대구를 선언하고 제주에 정착한 탓이다. 그동안 삼계탕사업에 지친 심신을 추스를 요량이었다. 그런 그가 사고를 쳤다. 제주도민은 듣도 보도 못한 난감한 요리를 개발한 것이다. 바로 ‘천봉향 돈해돈’, 일명 ‘제주식 동인동찜갈비’. 개발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2016년 1월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오라2동 대로변에 ‘돈찜#’을 오픈했다.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사용했다. 고춧가루, 마늘, 설탕, 물엿을 가미했다. 토박이를 대상으로 했는데 완패였다. 그는 차를 몰고 인근 공사장으로 찾아갔다. 토박이 인부들을 직접 데려와 툭하면 무료시식을 했다. 반응은 너무나 참담했다. 다들 ‘이게 뭐꽈’라고 했다. ‘이게 음식이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화가 났다. 다시 양념 연구를 시작했다. 그때 설탕과 물엿을 대신할 양념을 찾았다. 바로 한라봉이었다. 당시 제주에서 가장 비싼 감귤이었다. 한 지인에게 그걸로 담근 6개월 넘은 청이 있었다. 그걸 얻어 식재료로 활용한 것이다. 맛이 달랐다.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한라봉청을 넣고 고기를 삶으니 잡내 제거는 물론 살점도 너무 보들보들하고 윤기까지 흘렀다.

그는 한라봉청을 앞세우고 재오픈을 했다. 상호를 변경했다. 천봉향은 천혜향·한라봉·황금향의 준말. 3개월 전부터 출시한 건데 세 가지 청을 동률로 섞은 것이다. 그리고 돼지찜 옆에 전복, 낙지, 소리, 관자, 문어 등을 가미했다. 처음에는 관광객 80%, 토박이가 20%였지만 지금은 역전됐다.

그가 제주도에 처음으로 대구식 찜요리를 상륙시킨 셈이다. 요즘은 주말에 번호표를 뽑아야 할 정도로 자릴 잡았다. 맛을 봤는데 상당한 중독성을 갖고 있었다. 자칫 불조절을 잘 못하면 감귤향이 증발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향이 고기에 그대로 묻어 있다. 주방에서 중국식 프라이팬인 웍을 잘 놀린 덕인 것 같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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