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매전면 하평리 월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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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36면   |  수정 2017-11-10
500년된 은행나무가 지키는 감마을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매전면 하평리 월촌마을
하평리 월촌마을의 감나무 밭길. 하평리는 청도군에서 감나무가 제일 많은 마을이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매전면 하평리 월촌마을
청도 하평리 은행나무. 약 500년 된 것으로 경북도 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매전면 하평리 월촌마을
하평리 은행나무의 유주. 5~30㎝ 크기의 유주가 수십 개 달려 있다.

청도읍의 동쪽, 곰티재 터널을 통과하면 매전면이다. 터널이 생기면서 곰티재 넘을 일이 드물어졌지만 잿마루의 식당은 비교적 성업 중이다. 재 아래는 덕산리 곰티마을.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내려다보이는 매전면의 첫 마을이다. 감나무가 흔한 청도지만 가을빛으로 물든 감나무에 폭 뒤덮인 작은 마을은 설렌다. 매전면(梅田面)은 매화 밭이 아니라 감 밭이다.

청도군서 감나무가 가장 많은 하평리
산비탈 월촌마을은 경사지 가득 감밭
그 맨윗자리 높이 27m 은행나무 우뚝
종유석 닮은 5∼30㎝ 유주 수십개 눈길

◆ 재 넘어 천 따라 감마을 하평리

덕산리 다음은 관하리. 노랗게 물든 조그마한 논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소규모지만 벼 경작이 가능한 산골이다. 관하리 지나면 상평리다. 길가에 ‘감말랭이 원조마을’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청도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감말랭이를 1998년 이 마을에서 최초로 가공에 성공해 보급했다고 한다. 세 개의 마을이 짧은 거리에 다다닥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골짜기가 깊을 게다. 상평리에서 길이 휘어지면서 관하천과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길게 남하하는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하평리는 본마을인 모은정이다. 정자가 있었나 싶더니 얼추 맞다. 옛날 오리(五里)마다 정자를 두고 십리마다 원(院)을 둘 때 ‘오리에 약간 못 미쳐서 정자를 두었다’고 모은정이란다. 원래는 상평과 하평이 한 마을로 평동(坪洞)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하로 나뉘었다.

하평리는 관하천을 따라 좌우로 형성되어 있다. 들은 보이지 않고 죄다 밭인데, 청도군내에서 감나무가 가장 많은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하천을 많이 잠식해 개간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년 수해가 커서 2012년부터 제방공사를 했고, 지금 천은 꽤 넓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산자락마다 감나무다. 마을과 감나무 밭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감나무 속에 마을이 있고 마을 속에 감나무가 있다.

◆ 하평리 월촌마을의 은행나무

모은정 마을 남쪽에 월촌(月村)마을이 있다. 너부리 또는 광월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이후에 김해김씨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와서 월촌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월촌교에서 바라보면 아주 경사진 산비탈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태양이 산마루 위에서 빛나 희끄무레한 비탈이 은하수처럼 쏟아진다. 길은 지그재그로 오르면서도 가파르다.

마을의 가장 윗자리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거대하고 웅장하다. 형형한 시선에 흠칫한다. 정령이 깃들어 사는 게 분명하다. 우람한 뿌리 근육이 지상에 길게 드러나 있다. 저 굵은 뿌리로 비탈을 꽉 붙잡고 당당하게 서 있다. 그런 게 근 500년의 시간이라 한다. 나무는 높이 27m, 둘레 7.6m인 암나무로 수관(樹冠)의 폭이 동서로 33m, 남북으로 35m에 달한다. 거대한 원줄기가 3~4m쯤 위로 뻗어 있고, 그 이상에서는 20여개의 가지가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가지가 길다 보니 아래로 처지는 형국이다.

원줄기와 가지에 유주(乳柱)가 달려 있다. 석회동굴의 종유석처럼 나무에서도 유주가 흘러내리듯 땅을 향해 자란다. 전문가들은 줄기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자가 치유의 방법으로 나무 진액이 흘러나와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작게는 5㎝, 큰 것은 30㎝에 달하는 유주가 수십 개다. 나이 많은 은행나무에서 곧잘 생기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한 것은 아니다.

나무는 조선 중종 때인 1509년 김해김씨 낙안당(樂安堂) 김세중(金世中)이 심었다고 한다. 그 기념비가 나무 아래에 서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대보름날 동제를 올리고 있다는데 금줄이 쳐져 있지는 않다. 구슬만 한 은행이 나무 아래 가득하다. 은행을 밟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특유의 냄새가 짙지 않다. 나무는 아직 노랑보다 초록이다. 은행나무의 낙엽은 보통 10일에 걸쳐 지는데 짧은 기간에 일시에 떨어지면 풍년이 들고, 10일 이상 걸리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감마을의 감나무길

은행나무 아래 감나무 밭을 거닌다. 울긋불긋한 가지 위로 파란 하늘이 쨍하다. 빈 감나무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 감이 달려 있다. 알이 작다. 청도 감이 원래 이렇게 작았나? “올해 감이 잘아. 상품이 안 돼. 다들 감 따다가 손 놓아 버렸어. 인건비가 더 나오니까. 비가 안 와서 그래. 약도 소용없고 실력도 소용없지 비가 안 오면. 그래서 은행도 올해는 더 작아.” 동네 어르신의 말씀이다. “하평리가 감나무 젤 많은 마을이에요?” “그렇지. 젤 많지.”

감나무 밭 옆에 김해김씨 월촌 종중 재실인 월강재(月岡齋)가 있다. 낙안당의 후손인 기암(機庵) 김명하(金命夏)를 모신다고 한다. 재실 담벼락 옆 축대 위에 감 몇 개와 열매 하나가 놓여 있다. “짐승이 가져다 놓은 거야. 근데 무슨 열매인지를 모르겠어.” 성한 감을 주워 챙겨놓는 사람들의 마을, 이름 모를 짐승이 이름 모를 열매를 가져다 놓는 마을이라니. “은행 좀 주워 가지 그래요.” “손질할 줄을 몰라서요.”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어떤 신성한 것에는 차마 손댈 엄두를 못 낸다는 게 진실이다.

마을 초입 감나무 밭에 부부가 감을 따고 있다. 놓아버리는 건 고통이지만 애써 붙잡는 건 더한 고통일 게다. 월촌교에서 다시 한 번 마을을 바라본다. 처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은행나무를 보지 못했다. 아직 푸름이 더 많아 산빛에 숨겨져서인지, 눈이 부셔 보이지 않았던 건지. 이제는 확연히 보인다.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엄청난 거대함이다. 부디 내년에는 풍년비가 오게 해 주세요. 은행 냄새가 대구로 오는 내내 진동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가창에서 팔조령을 넘거나 중앙고속도로 청도IC로 나가 청도읍으로 간다. 밀양 방향 25번 국도로 가다 청도읍 모강교차로에서 운문, 경주 방향 20번 국도를 타고 간다. 곰티재 터널 지나면 매전면 덕산리, 계속 직진해 가면 상평리 지나 하평리다. 하평리 본마을인 모은정 마을 지나 조금 더 가면 하평리 월촌이다. 은행나무는 마을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다. 그 아래 마을 모은정 부근에 1대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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