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너무 일찍 떠난 배우 김주혁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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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43면   |  수정 2017-11-10
작품서 언제나 따뜻했던 그가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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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주혁의 출연작 ‘공조’(위)와 ‘광식이 동생 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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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사진으로 쓰인 잡지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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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30일이었다. 오후 4시30분경 배우 김주혁이 몰던 SUV 차량이 승용차를 추돌하고 나서 인근 아파트 벽면에 부딪히고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워낙 차량이 심하게 파손되는 바람에 오후 5시7분쯤에야 그는 차량 밖으로 구조됐다. 건국대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당시 이미 의식이 없었다. 병원 측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오후 6시30분 사망했다. 나는 우연히 같은 시간에 서울에 있었다. 몇 명이 함께 연사로 선 토크쇼였다. 물론 내가 있던 곳에서 김주혁의 사고 현장까지는 20㎞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행사가 끝나는 시간에 그는 눈을 감았다.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 정신이 아득했다.

이후 언론은 물론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김주혁을 추모하는 물결이 확산되었다. 그와 함께 연기했던 배우들을 위시한 동료와 팬들의 추모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유튜브의 해외 한류 채널에서도 관련 뉴스가 이어졌고 해외 누리꾼들의 추모 댓글 역시 계속되고 있다. 영국 BBC에서도 기사를 냈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한정근은 “한국 연예계에 큰 구멍이 뚫린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사고 당일부터 발인에 이르기까지 한 배우의 죽음이 장례기간 내내 국민적 관심을 모은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주혁의 사망이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슬픔으로 확산된 것은 생전 그가 보여준 진심과 따스함을 대변한다”며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난 그에게 감히 ‘국민 친구’라는 애칭을 선사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1998년 SBS 공채 탤런트로 공식데뷔
영화 ‘싱글즈’‘홍반장’‘광식이 동생…’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등 로코킹 입지
2010년 흥행까지 잡은 ‘방자전’선 파격
최근 ‘공조’ 첫 악역 등 남다른 연기 열정

배우로 이례적 예능 고정출연 호감 상승
사흘전 배우 20년 만 첫 賞 기쁨 가시기 전
교통사고로 운명 달리한 비보 더 충격



김주혁은 1972년 10월3일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1998년 SBS 공채 8기 탤런트로 공식 데뷔했다. 영화 데뷔작은 김성홍 감독의 ‘세이 예스’(2001)였다. ‘손톱’ ‘올가미’ ‘신장개업’ 이후 김 감독이 내놓았던 네 번째 스릴러물이었다. 김주혁은 여기서 배우 박중훈, 추상미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최근 ‘아이 캔 스피크’를 연출하기도 한 김현석 감독의 데뷔작 ‘YMCA 야구단’(2002)이 그가 두 번째로 고른 작품. 김주혁은 일본에서 야구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투수이자 독립운동가 오대현으로 분했다. 당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송강호에게 “기본기가 아주 탄탄하게 잘 닦이고 훈련되어 고전 배우의 무게감을 지닌 배우”라는 평을 받았다.

이후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2003)부터 강석범 감독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 동생 광태’(2005)까지 김주혁의 초기 흥행작들은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물로서 최선의 결과들을 보여주었고, 여기에 배우 전도연과 함께 연기했던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까지 이어지면서 김주혁은 ‘한국의 휴 그랜트’로 불리며 로코킹이 되었다. 특히 ‘홍반장’과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직접 불렀던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같은 노래들은 이상하게 관객의 마음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소름’으로 국내외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윤종찬 감독이 차기작으로 내놓은 ‘청연’(2005)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비행사로 활동한 신여성 박경원의 삶을 다루었지만 안타깝게도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아쉬운 흥행 성적을 거둔다. 이 영화의 두 주연 배우가 이제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가슴 아프다.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철하 감독의 ‘사랑따윈 필요없어’(2006)에서는 배우 문근영과,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박현욱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윤수 감독의 ‘아내가 결혼했다’(2008)에서는 배우 손예진과 함께 연기했다.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2010)에서는 배우 조여정과 원작 ‘춘향전’을 파격적으로 변주하기도 했다. 박건용 감독의 ‘적과의 동침’(2011)과 김상진 감독의 ‘투혼’(2011), 정용기 감독의 ‘커플즈’(2011)는 각각 전쟁, 야구, 로맨스를 곁들인 코미디물이었다. 흥행도 흥행이었지만 이 작품들이 한 해에 쏟아지면서 김주혁으로선 엇비슷한 연기에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신’이나 ‘구암 허준’을 거치며 TV 드라마로 숨고르기 했던 김주혁이 선택한 차기 행보는 KBS2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시즌 3였다. 프로그램 이전 시즌에서 출연자로 배우를 섭외했다 실패한 전례가 있어 초기에 의견이 분분했지만, 출연이 확정되고 회를 거듭할수록 출연자들 간의 화학작용으로 그는 시청률 상승의 주역이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출연자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점잖고 과묵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임이 드러나며 호감도가 상승했다. 2015 KBS 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최고 엔터테이너상을 받을 정도로 김주혁의 공헌도는 컸다. 그러나 2년간 계속된 출연 이후 2015년 12월 본업인 연기 스케줄을 이유로 하차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을 무려 21인 1역으로 캐스팅한 백종열 감독의 ‘뷰티 인사이드’(2015)와 SNS 연애 풍속도를 담은 박현진 감독의 ‘좋아해줘’(2016)로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 김주혁은 ‘미쓰 홍당무’에 이은 이경미 감독의 8년 만의 연출작 ‘비밀은 없다’(2015)에서 국회 입성을 노리는 야심 많은 신진 정치인을 연기했다. 또 홍상수 감독의 18번째 장편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에서는 친구들로부터 애인이 술 마시고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화가를 연기했다. 모두 이전의 김주혁이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었다. 김성훈 감독의 ‘공조’(2016)에서 사실상 생애 첫 악역을 연기해 지난 10월27일 제1회 더 서울어워즈 영화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기 3일 전에 받은 이 상은 배우 경력 20년 만에 받는 그의 첫 상이었다.

그래서 더 아깝고 안타깝다. 이제 막 스스로 배우로서의 변화와 쾌감을 느낀다는 그를 나는 더 보고 싶은데 그는 이제 여기, 없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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