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고령군 다산면 권경화씨

  • 진정림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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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5 08:24  |  수정 2017-11-15 08:24  |  발행일 2017-11-15 제33면
가족과 2년3개월 세계여행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났죠”
20171115
2년3개월간 43개국을 여행한 권경화씨 가족이 볼리비아 라파스의 비경 ‘악마의 이빨’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살던 집 처분하고 전 재산 털어 출국
돈 아끼려 차에서 자고 길에서 먹고
우여곡절 43國 여정…모든 게 추억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선택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법 배워”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내가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2015년 6월29일, 권경화씨(48·고령군 다산면)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의 첫 문장이다. 다음날 그는 가족과 함께 장장 2년3개월간의 세계여행을 위해 한국을 떠났다.

누구나 세계여행을 꿈꾸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권씨 가족은 달랐다. 가장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세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로 떠났다. 살던 집을 처분하고, 전 재산을 털어 820일간 43개국을 돌아다녔다.

권씨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개조한 버스나 승용차를 가지고 가야 하나,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현지에서 하루하루 삶을 이어나가는 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이 알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일반 여행자들이 다니는 루트는 거부했다. 그렇다보니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개로 우연히 북한 사람을 만나 함께 부대끼며 민족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전통그네를 탔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 현지인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 때로는 시리아 난민들과 같이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날,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넘어가는 이동수단을 구하지 못해 덜덜 떨기도 했고, 가장 싼 비행기를 예약하기 위해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온 가족이 길을 나설 때도 있었다.

권씨는 “기차에서, 버스에서, 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권씨 가족은 최소한의 경비로 여행을 하기 위해 렌터카에서 자고, 길 위에서 밥을 먹었다.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려면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이나 산속을 찾아가야 했다. 좁은 차 안에서 잠을 자려면 짐들을 차 밖으로 내놓아야 했는데, 차 밑에 넣어둔 신발을 동물들이 가져가기도 했다. 좁은 공간에 앉아서 자느라 다리가 퉁퉁 붓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페루에 있는 마추픽추를 찾아가는 여정도 힘들었다. 몇 십만원짜리 차를 이용하는 대신 9시간을 꼬박 걸었다. 어두워지면 동네에서 자고, 또 다음날 걷기를 반복했다.

권씨는 “경비를 줄이자는 이유도 있었지만, 현지인들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며 “지도에도 없는 길을 다니다가 강도를 만나 휴대전화를 빼앗기기도 했지만, 다시 가더라도 그 길을 꼭 걸어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나라마다 음식과 문화가 다채로워 꼭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다고 꼽기 힘들다고 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의 안좋았던 기억마저도 추억이 됐다.

권씨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동양에서 온 가족을 보고 신기해하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돌을 던졌다. 그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냈는데, 크게 반성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남편과 함께 배낭여행도 자주 다녔으며, 두 아이를 데리고 인도를 두달간 여행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도 권씨가 아이 셋만 데리고 1년 정도 여행을 계획했는데, 남편도 가고 싶어해 함께 떠나게 됐다. 그는 “가족의 구심점인 가장이 없는 가족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으로 함께 가게 됐다”며 “자신의 꿈을 접으면서도 가족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이해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나도 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명쾌한 대답을 들려줬다. “망설이지 말고, 가고 싶을 때 떠나야 최대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죠.”

진정림 시민기자 truefore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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