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병철과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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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6   |  발행일 2017-11-16 제29면   |  수정 2017-11-16
[기고] 이병철과 전태일
이헌태 대구 북구의회 의원

이병철과 전태일 두 사람은 우리 현대사 속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살았다. 호암 이병철은 삼성을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 그룹으로 키웠고, 청년 전태일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현대사에서 가지는 두 사람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호암은 남들이 이루지 못한 성취를 이뤘다. 삼성의 성장 과정에서 관치나 정경유착 같은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삼성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 혁신, 곧 생산성 향상에 앞장섰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다. 그 기반을 쌓은 호암의 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우리 경제의 고도 성장 과정에서 기본적인 인권조차 유린당하던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했다. 그의 희생은 우리 사회 전체에 노동기본권 및 평등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불러일으켰으며 노동기본권을 향상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두 사람은 자본과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지만 공교롭게도 대구와는 깊은 인연이 있다.

호암은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해 기반을 닦은 대구 출신 기업가이고, 전태일은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스스로 행복했다고 회고한 학생시절을 보낸 출향인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조사해 보면 대구를 홍보하는 가장 훌륭한 소재는 세계적 기업 삼성그룹의 발상지라는 점이다. 호암의 생애 흔적을 만나기 위해서는 대구 북구 삼성창조캠퍼스에 가면 된다. 옛 제일모직 터인데,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 건물을 중구 인교동에서 현재 북구 칠성동 삼성창조캠퍼스로 이전 복원했다. 삼성상회는 1938년 전화기 1대와 종업원 40명으로 시작했다. 대구 근교의 청과물과 동해안의 건어물을 수집해 만주와 베이징 등지로 수출했고 국수공장도 운영했다. 당시 삼성이 만든 ‘별표국수’는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현재 삼성창조캠퍼스에는 1938년 삼성상회와 1954년 제일모직을 일구던 호암의 집무실과 제일모직 공장 일부 및 기숙사가 그대로 보존돼 있어 당시 시대상과 함께 패기 넘치는 사업가의 자취를 오롯이 엿볼 수 있다.

삼성그룹은 그 이후에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브랜드파워를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삼성그룹 분위기가 어수선한 탓에 삼성상회와 제일모직 건물 복원 이후 호암의 집무실 공개는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건물 바로 옆에 호암의 동상이 있는데 동상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이 퍼져 찾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덧붙여 삼성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삼성기념관 또는 전시관 형태로 확장하면 대구를 찾는 외국관광객의 단골 방문코스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한편 1948년생 전태일은 대구에서 태어나 두 살 되는 해 피란갔다 만 15세 때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2년 남짓 살던 생거지(生居地)는 대구 중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구지역 시·구의원 모임 민주자치연구회 ‘파랑새’는 지난 8월 이곳에 전태일기념관 건립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다. 대구에 전태일기념관이 생기면 대구가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업적 두 가지, 곧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를 고루 소중히 여기는 도시, 자유와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늘 기리는 도시,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하는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태일 생거지 및 그가 다녔던 청옥고등공민학교까지의 등하굣길 500m를 전태일로(路)로 지정하고 정비하면 대구의 대표관광지인 김광석거리 못지않은 명소가 될 것이다. ‘전태일 평전’을 쓴 대한민국 인권변호사의 상징인 조영래 변호사의 생가와도 가까워 세 곳이 연계되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대구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화답하듯 적극 나섰고 도종환 문체부장관도 이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대구경북특위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0년이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자신을 태워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한지 50주년, 반세기를 맞는다. 이 시점에 맞춰 전태일기념관이 성공적으로 완공되기를 희망한다.이헌태 대구 북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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