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색깔정치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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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6   |  발행일 2017-11-16 제31면   |  수정 2017-11-16

지난 9월 독일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중도 우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은 하원 의석의 33%를 득표했다. 소속 당이 1위를 차지해 메르켈 총리의 4연임엔 성공했지만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메르켈은 기민당·자유민주당·녹색당 연정을 꾸릴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에선 이를 ‘자메이카 연정’이라 했는데, 색깔과 정치를 조합한 네이밍이 절묘하다. 기민당·자민당·녹색당의 상징색이 각각 검정·노랑·초록으로 자메이카 국기의 색과 같아서 붙인 이름이다.

중국에선 시대에 따라 유행색이 달랐다. 하(夏)나라 시절엔 사대부·평민 가리지 않고 검은색을 좋아했으며, 은(殷)나라 백성들은 흰색을 숭상했다. 주(周)나라 때 붉은색은 통치자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문화혁명 광풍이 몰아치던 1960년대엔 초록 물결이 대륙을 뒤덮었다. 당시 녹색 군복은 혁명과 충성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너나 할 것 없이 초록색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 초록은 마오쩌둥의 정치이념이 밴 색깔이었다.

지난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모두 빨간색 넥타이를 맨 걸 두고 관계개선의 징표라는 해석이 나왔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코드를 맞춘 건 양국의 조율이 매끄럽게 진행됐다는 의미다. 지난 7월 베를린에서 열린 한·중 첫 정상회담에선 문 대통령이 빨강, 시 주석은 파랑으로 서로 넥타이 색깔이 달랐다. 그땐 사드 갈등이 고조될 시기였다.

지난 9월21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안 국회 표결 때도 넥타이 ‘깔맞춤’이 유난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정세균 국회의장,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민의당 상징색인 녹색 넥타이를 맸고, 뉴욕에 머물렀던 문 대통령도 ‘평창의 밤’ 행사에 초록 넥타이를 매고 등장했다. 캐스팅 보터를 쥐고 있던 국민의당의 마음을 얻겠다는 의도였다.

색의 조화를 통해 본인의 의사를 은근히 표출하는 색깔정치는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불러일으킨다. 색깔정치의 매력이다. 반면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 정치적 색깔을 자주 바꾸는 ‘카멜레온 정치’도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넘나드는 철새들이 카멜레온 정치인의 전형이다. 카멜레온 정치의 말로가 궁금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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