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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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8   |  발행일 2017-11-18 제23면   |  수정 2017-11-18
[토요단상]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 아니다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한국수필문학관이 개관 2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문학관이 대구에 건립되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수필문학관을 대구에 건립하고자 할 때 타 지역의 견제가 많았다. 당연히 문화의 중심지 서울에 지어야지 왜 대구에 짓느냐는 것이었다. 굳이 대구에 짓겠다면 한국이라는 명칭을 빼고 대구라는 명칭을 쓰라는 압력도 있었다. 대표성을 대구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거기에 대한 대응은 ‘억울하면 먼저 지어라’였다. 타 지역이 어영부영하는 순간에 소규모이기는 하나, 수필문학관을 후딱 지어버렸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수필문학관은 대체로 세 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수필 홍보 진흥을 위한 전시의 기능, 자료의 발굴과 보존 그리고 아카데미 기능이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수필문학관에서는 2015년 개관한 이래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수필가들의 현황을 전시하고, 개인과 단체를 조명하는 전국단위 행사를 수시로 개최하고 있다. 개관 때는 전국 각지의 수필단체에서 발간하고 있는 140여 종의 수필지를 전시하였으며, 작고 문인의 유품전을 열어 선배 문인을 추모하는 아름다운 사업을 주관한 바 있다. 수필문학관이 중심이 되어 전국의 수필가들을 대구로 모이게 한 것이다.

작은 공간이기는 하나 수필문학관은 현재 드나드는 발길이 분주하다. 우선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강의실이 돌아가고 있다.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수필 강좌가 불을 밝힌다. 목·금요일에는 소설반이, 화·수요일에는 아동문학과 시창작반, 시낭송반이 운영되고 있다. 문학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성인 동아리와 자유학기제를 맞은 학생들이 탐구활동을 위해 문학관을 찾고 있다.

아무래도 2년 동안의 두드러진 성과는 수필자료의 수집과 보존이라고 하겠다. 현재 수필문학관은 3만여 점의 수필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아직은 질적·양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그동안 지원해 준 손길들을 헤아려보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수필문우회 고봉진 회장님은 800여 점의 수필, 미술, 사진 관련 자료들을 직접 화물차로 보내주셨다. 그중에서도 김태길 선생님의 자료들을 뭉텅이로 보내주셔서 앞으로 따로 김태길 선생 수필전시회와 세미나를 개최해도 될 것 같다. 청주 수렛골의 김애자 선생님도 열 박스 가까운 책들을 택배로 보내주셨는데 구석진 촌에서 책들을 분류하고 손수 묶어서 보내느라 고생고생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구의 정혜옥, 허창옥 선생님도 다문다문 오가시는 길에 “이 책이 필요하지?” 하며 낡은 책들을 두고 가신다. 자료수집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김한성 선생님도 두어 달에 한 번씩 책을 묶어놓고 전화를 주신다. 지난여름에는 수필계의 원로인 서울의 윤재천 교수님이 평생 소장하고 있던 1만 점의 자료들을 이곳으로 보내주셨다.

현재 수필문학관이 가장 자랑하고 싶은 자료는 전국에서 발간된 각종 대중 매체의 창간호들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연극, 영화, 교육, 학교 교지, 심지어 반상회 회보까지 전 분야에 걸쳐 2천여 점의 창간호를 소장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데이서울’ ‘뿌리깊은 나무’ ‘음악동아’ ‘소년중앙’ 등의 표지들이 덧없는 세월과 시대 흐름을 한눈에 보게 한다.

지난 11월 초부터 수필문학관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발간된 수필문예지 창간호 120여 종과 장르별 문예지 창간호 400여 종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바가 크다. 우리의 전통시 시조(時調)의 역사가 고려 말까지 거슬러 가는 것은 알고는 있었으나 흔들림 없이 이어져 온 그 튼튼한 맥을 탈색된 시조집들을 보며 깨닫게 된다. 만지면 바스러지는 낡은 시집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시대를 향한 시인들의 충혈된 눈과 각혈을 읽게 된다.

쉽게 버리는 시대다. 낡은 것은 더더욱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 아니다. 버려지는 것들 속에 시대의 보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창간호 전시회를 보며 깨닫는다.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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