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인본주의 비판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1-20 07:53  |  수정 2017-11-20 07:53  |  발행일 2017-11-20 제17면

유발 하라리의 두 저서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관통하는 관점 중 하나는 인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두 책에서 지난 300년간 인본주의가 하나의 지배 종교로서 역할을 했으며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시급히 인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라리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근대 문명 자체는 바로 인본주의에서 비롯됐다. 근대 문명의 세 가지 기둥이 분리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과 그 개인이 가진 가장 뛰어난 능력으로서의 이성, 그리고 그 이성을 활용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라는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고 가정하는 인권이다. 하라리는 인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인본주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특유의 신성한 성질이 있고, 이 성질은 다른 모든 동물이나 다른 모든 현상의 성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믿음이다. 인본주의자는 호모 사피엔스 고유의 성질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그것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최고의 선은 호모 사피엔스의 선이다. 나머지 세상 전부와 여타의 존재는 오로지 이 종을 위해 존재한다. (중략)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에서 지키고자 하는 개인의 자유롭고 신성한 본성에 대한 믿음은 자유롭고 영원한 개인의 영혼을 믿었던 전통 기독교에서 직접 물려받은 유산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인본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하라리가 주장하듯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으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는 오늘날의 인간과 여타 생물의 관계와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나타난 일종의 사이보그와 그렇지 못한 사피엔스와의 관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금강경’에는 사상(四相)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그것이다. 아상이란 말 그대로 ‘나’라는 분리 독립된 개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아상에 의해 우리는 피부 경계선을 중심으로 그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찮게 여긴다. 인상은 바로 하라리가 말하는 인본주의다.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기 때문에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 인상이다. 중생상이란 모든 것을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어 생물 위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생명이 중심이 되므로 무생명은 당연히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렇다면 수자상이란 무엇일까? 수자상이란 시간적으로 무한한 것을 중심으로 유한한 것을 하찮게 보는 관점이다. 인간의 몸은 유한하지만 영혼은 무한하기 때문에 영혼을 몸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수자상인 것이다.

‘유엔보고서 2045’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그래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점- 이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른다- 을 2045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네안데르탈인이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아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는 인공지능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불과 30년도 남지 않은 기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오직 인간만이 가장 뛰어난 존재이고 따라서 나머지 모든 존재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인류가 인본주의를 벗어나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볼 수 있을 때 인공지능 역시 우주 삼라만상을 모두 평등하게 여길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