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쏙쏙 인성쑥쑥] 믿음을 보여주는 것(示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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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0 07:57  |  수정 2017-11-20 07:57  |  발행일 2017-11-20 제18면
[고전쏙쏙 인성쑥쑥] 믿음을 보여주는 것(示信)

울산에 살고 있는 아들집에 갔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 살 난 손자가 사용하는 방의 문이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문엔 손자가 ‘비밀방’이라고 써 붙여 놓았습니다. 열쇠를 찾아 몰래 방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여닫는 문 안쪽에 ‘각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과두체(體, 올챙이 모양)보다 더 삐뚤어진 글씨로 ‘혼냄 벌칙, 인형 뽑기 안합니다’의 내용이었습니다. 아마 아빠와 아들의 공동 각서를 손자가 쓴 듯합니다.

천자문에 ‘신사가복(信使可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일은 마땅히 되풀이 행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는 말에 전혀 거짓이 없는 일을 ‘믿음(信)’이라 합니다. 성실함을 일컫기도 합니다.

세종실록에는 ‘시신(示信)’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이것은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종 7년에 엽전과 저화(楮貨, 쌀 한 되에 해당되는 종이 돈)에 대하여 논의하던 중 여러 신하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믿음을 보여 주는 것 만한 것이 없다(莫如示信)’고 합니다. 세종은 즉위년에 저화를 보배로 여겨서 그것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저화는 관청에서만 통용되고 백성들은 불편하여 엽전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논의하던 세종은 저화를 가진 백성들이 근심하고 걱정할 것이라고 여겨 그들에게 엽전을 주고 저화를 거둬들이라고 합니다.

세종 8년에 대제학 변계량이 화폐법을 개정하여 민간과 관부에서 융통성 있게 운영하자고 건의합니다. 세종은 ‘그 말의 요지를 살펴보니 의도는 매우 좋다. 그러나 법을 세우는 것은 백성들에게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示信於民) 어찌 백성의 좋아하고 싫어함에 따라 다시 바꿀 수 있겠는가? 화폐의 법이 관부에서만 홀로 시행되고 민간에서는 시행되지 않는다면, 백성에게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非示信於民) 옛날에 삼장지목(三丈之木)을 세워 놓고 믿음을 얻었던 자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국 진나라의 재상 상앙(商)은 백성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삼장목(三丈木)을 남문에 세웁니다. 이 삼장목을 북문에 옮기는 사람에게는 10금을 준다고 포고합니다. 그것을 옮기는 사람이 없자 상앙은 다시 50금으로 인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반신반의하면서 삼장목을 북문으로 옮겼습니다. 상앙은 저잣거리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50금을 상으로 내렸습니다. 상앙은 변법을 만들어 효공시대에 진나라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공자도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큰 수레에 소의 멍에걸이가 없고, 작은 수레에 말의 멍에걸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프레데릭 아미엘은 ‘믿음이란 거울과 같아 한 번 금이 가면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데미안에 ‘병아리도 알에서 깬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섯 살 손자가 알 속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줄()’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어미닭처럼 알의 바깥쪽에서 ‘탁(啄)’해야 합니다. ‘줄탁동시(啄同時)’는 함께해야 합니다. 어쩌면 손자의 각서도 자기 자신으로 부단히 가기 위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의 지혜일 듯합니다.

박동규<전 중리초등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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