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 임시대피소 2곳 취재기…“추위에 몸 얼어붙었는데…삼시세끼 식은 도시락 먹자니 서러워”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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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1 07:22  |  수정 2017-11-21 07:22  |  발행일 2017-11-21 제4면
칸막이작업 때문에 분산 수용된 이재민
구호품 늑장 지급 등 열악한 상황 호소
실내체육관 복귀 계획까지 미뤄져 분통
흥해 임시대피소 2곳 취재기…“추위에 몸 얼어붙었는데…삼시세끼 식은 도시락 먹자니 서러워”
포항 남산초등에 임시로 분산 수용된 이재민들이 20일 오전 10시 흥해실내체육관으로 옮겨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다.

20일 오전 10시 포항 북구 흥해읍 남산초등 실내체육관. 아침 식사를 마친 이재민들이 모포와 깔판, 옷가지 등 짐을 싸고 있었다. 지진 당일 피해를 당한 집을 나와 닷새간 지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이재민들이 짐을 싼 지 3시간여가 지났지만 공무원들의 이동 지시나 통제는 없었다. 전날 포항시가 임시로 하루만 흥해공고와 남산초등에 이재민을 분산수용한 뒤 다시 흥해체육관으로 재이동시키기로 한 이날 계획이 별다른 이유없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모씨(여·38)는 “어제(19일) 이곳으로 올 땐 오늘(20일) 오전쯤 흥해체육관으로 다시 이동한다고 해서 짐을 다 꾸려 놨는데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있다”면서 “사생활 보호를 할 수 있는 칸막이나 텐트를 쳐준다고 해서 힘들어도 참고 옮겨 왔는데, 여기서 더 있어야 한다니…”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19일 흥해체육관에서 흥해공고·남산초등으로 분산수용된 이재민들이 잦은 이동과 열악한 대피소 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엿새째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는 김명옥씨(여·67)는 “남산초등은 대성아파트와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처럼 장기 이재민들만 온다고 해서 처음에 흥해공고로 갔는데, 흥해공고에선 다시 남산초등으로 이동하라고 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두 번이나 이동했다”면서 “나처럼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정확히 파악도 안하고 있다. 심신이 지친 이재민들을 오라가라하니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피소가 구호물품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채 이재민을 수용한 것도 문제다. 밥차를 이용해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흥해체육관과 달리 남산초등 이재민들은 매 끼니를 도시락으로 때우고 있다.

윤석순씨(여·67)는 “삼시 세 끼 도시락을 먹는 게 말이 되냐”며 “갑자기 추워져 몸이 얼어붙었는데 따뜻한 국도 없이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먹자니 서럽기 그지없다. 도저히 먹기가 힘들어 한두 숟갈 뜨고 죄다 버린다”고 말했다.

흥해공고에 있는 이재민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밤 물과 간식거리가 없어 굶주린 배를 움켜 쥐어야 했다.

이상근씨(65)는 “실내체육관에선 라면도 주고 바나나·귤 등 과일을 간식으로 줬는데, 여긴 오후 5시 저녁식사 후 먹을 간식이 하나도 없다”면서 “여기 온 날 저녁엔 공무원들이 물을 창고에 쌓아둔 것도 모르고 늦게 줘서 사람들이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를 둔 이재민들은 아기용품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24개월된 아들을 둔 김예림씨(여·38)는 “여기서 주는 음식은 아기가 먹을 수 없는 것뿐이다. 도저히 먹일 게 없어서 아이에게 컵라면을 먹였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기저귀도 못 챙겨와서 공무원에게 요청했더니 집에 가서 가져오라고 했다. 결국 밤에 집에 들어가서 아이와 함께 보내고 다시 대피소로 나왔다”며 “아기가 지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 일부 아기 엄마들은 이미 다른 지역의 친척이나 친구집으로 떠났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당초 20일 흥해체육관으로 이재민을 재이동시키기로 했으나 제반 여건을 검토하고 있어 늦어지고 있다”면서 “흥해체육관 외에도 이재민을 대피시킬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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