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고령 성산中 ‘엄마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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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1   |  발행일 2017-11-21 제30면   |  수정 2017-11-21
아기까치를 지키려다가
함께 떨어져 죽은 어미
고령 성산중학교 교정
한편의 동화같은 얘기가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3040칼럼] 고령 성산中 ‘엄마까치’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고령으로 출장 가던 날, 차 안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들은 대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대구에서 광주행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동고령IC에서 내립니다. 요금소를 벗어나면서 만나는 국도. 여기서 고령 쪽으로 우회전해서 500m쯤 가면 오른쪽에 ‘성산중학교’가 나옵니다. 이 학교 교정에서 1990년 3월에 있었던 일이라 했습니다.

새봄을 맞아 교정에는 나무 가지치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이 학교 운동장 동편 담장 가에는 당시 20년 넘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키가 큰 플라타너스 꼭대기에는 까치 가족이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며 가지를 치던 작업인부는 꼭대기의 그 까치집이 미처 보이지 않았던가 봅니다. 톱질이 반복되면서 거친 흔들림 끝에 까치집이 바닥으로 떨어져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잘려진 굵은 가지가 까치집을 무참히 덮쳤습니다. 부서진 둥지에서 어미까치가 퍼득거리자 학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갓 부화한 새끼 네 마리와 두 개의 알을 날갯죽지 속에 꼬옥 품은 어미까치는 부리에 피를 흘리며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달려들어 까치를 끄집어내어 안고 두 발 동동 굴렀습니다. 하지만 까치는 새끼들과 함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말없이 한참을 둘러섰던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린 새끼들과 알을 한꺼번에 품어 안고 안절부절못했을 그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둥지를 지킨 어미까치의 헌신적인 모성애가 너무 슬퍼”하며 저마다 안타까워했습니다.

학생들은 양지바른 화단에다 구덩이를 팠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어미까치와 함께 숨진 새끼들도 두 손에 담아왔습니다. 깨져버린 알도 남김없이 주워왔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학생들은 이 까치 가족을 구덩이에 정성스레 묻었습니다. 마른 흙을 긁어모아 봉분을 다졌습니다. 작은 무덤이 생겼습니다. 나무 조각에다 ‘까치무덤’이라 적어서 낮은 비목도 세웠습니다. 편안한 둥지 속에서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건강하게 자라던 새끼까치들. 봄 하늘 속으로 행복한 비상을 꿈꾸던 그 까치들이 졸지에 숨져 이곳에 묻혀버린 것입니다.

대충 이런 줄거리였습니다. 출장업무가 바빴지만 하루 종일 그 까치일가의 안타까운 사연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성산중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골 중학교 교정은 한산하고 고요했습니다. 까치무덤이 있었던 곳이라는 북쪽 화단엔 그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때마침 학교를 나서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곳에 있었던 ‘까치무덤’을 아는 학생?” 아무도 몰랐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일행 중에서 “지금이라도 그 자리에다 ‘까치무덤’이라 새긴 아담한 비석을 하나 다듬어놓으면 어떨까. 그 앞에 어미까치 이야기를 적은 안내판도 사실대로 세우고”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큰돈 들 일 아니니 학교에서 마음을 내어도 될 거야. 교육청에서 관심을 가지면 더 좋겠고. 그렇게 조성해 놓으면 이 학교 학생들의 인성교육에는 물론이고 소문나면 멀리서도 찾아올 텐데. 해마다 가정의 달 5월엔 이 학교 운동장에서 어미까치 이야기를 테마로 독특한 행사를 열어도 뜻깊을 것”이라며 보탰습니다.

예로부터 아침에 우는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겼습니다. 음력 칠월칠석엔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몸을 이어 오작교를 놓았다고 전하지요. 이런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우리 텃새 까치의 헌신적인 ‘모성애’가 고령 성산중학교 교정에 묻혀 있습니다. 당시 영남일보에는 ‘까치무덤…동심을 감동시킨 모성애’라는 기사가 까치무덤 사진과 함께 소개됐다고 합니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이 시대의 전설입니다.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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