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 엑소더스’ 진앙 가까운 대피소 대신 친척·지인집으로 피난

  • 권혁준
  • |
  • 입력 2017-11-22 07:12  |  수정 2017-11-22 09:21  |  발행일 2017-11-22 제4면
계속되는 여진에 불안감 가중
견디다 못한 주민들 이주행렬
이삿짐센터 견적 문의도 급증
20171122
지난 20일 오후 1시쯤 포항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F동 한 주민이 피난을 위해 자신의 차량에 실은 가재도구들.

21일 오전 11시쯤 포항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E동 앞에서 만난 예솔이 엄마(27)는 먼 길을 떠나는 듯한 행색이었다.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은 채 16개월 된 딸 예솔이를 아기 띠로 안고 있었다. 여기에다 등엔 검은색 백팩, 한 손엔 큼지막한 여행용 가방 손잡이가 쥐어져 있었다. 대성아파트 B동 407호에 사는 그는 일주일간 계속된 여진에 견디다 못해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 친정집으로 간다고 했다. 예솔이 엄마는 “오늘 오전 8시57분·9시53분에 발생한 여진을 감지했다. 지난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앞뒤 베란다와 도시가스 배관 쪽 벽에도 심한 균열이 난 상태에서 여진을 느끼게 되니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면서 “계속된 여진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더는 못 견디겠다는 생각에 친정집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포항 북구 한 빌라에 사는 김모씨(여·30)는 포항 강진 이튿날 대구로 온 가족이 피신했다. 그는 “아이 2명과 남편이 모두 함께 대구 친정집으로 옮겨왔다”면서 “지진으로 심하게 금이 간 집에선 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남편 직장이 포항이지만, 당분간 대구에서 출퇴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규모 5.4 강진 이후 모두 61차례 이어진 여진으로 포항 흥해 주민들이 정든 집을 떠나고 있다. 지진 노이로제로 인한 이른바 ‘흥해 엑소더스’다. 이들은 진앙과 가까운 대피소보다 안전한 친척 집이나 지인 집으로 피난하고 있다. 피난처는 포항 남구 오천읍·연일읍·지곡동을 비롯해 멀리 대구와 서울 등이다.

21일 오전 찾은 대성아파트 건물 앞 화단엔 침대와 장롱, 장식품 등 주민들이 버린 살림살이들이 한눈에 들아왔다. 대성아파트 A동 이모씨(43)는 “지진이 난 첫날 남구에 마련해 둔 집으로 잠시 피난 갔다. 어제 다시 들어왔는데, 지금 이 아파트 주민 가운데 3분의 1은 대피소, 3분의 1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상황은 주변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대성아파트와 인접한 한미가든맨션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도 대피소가 아닌 자녀·친척 집으로 몸을 피했다. 한미가든맨션 반장 황모씨(여·60)는 “우리 아파트는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첫날 물·전기가 끊겨서 주민 중 상당수가 친척 집으로 피했다”면서 “나도 오천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507호 사는 사람은 어제 서울에 있는 자녀 집으로 갔고, 108호 아저씨도 칠곡에 있다고 전화를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반장이라서 이웃들한테서 재난 피해신고서를 받아야 하는데, 다른 곳에 있어서 신고서를 받지 못한 집이 많다. 신고서 작성을 못 한 집이 85가구 중 20~30%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우황실맨션 한 주민은 “4~5층에 사는 주민 대부분이 옷과 통장 등만 챙겨서 대피소가 아닌 친척 집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흥해 주민들이 집을 떠나 자녀·친척 집으로 옮겨가면서 이사 문의도 급증했다. 평소 하루 평균 1~2건 문의를 받았지만, 지진 이후엔 10건 가까이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 포항 흥해지역 한 이삿짐센터 대표는 “지진 발생 이후부터 이사 견적 등 문의 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 어제도 두 집이 오천 쪽으로 이사했다”면서 “여유가 조금 있는 집들은 불안한 마음에 곧바로 이사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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