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분권과 기본권부터 개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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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2   |  발행일 2017-11-22 제8면   |  수정 2017-11-22
20171122

국회 개헌특위에는 국회의원들 외에 수십 명의 자문위원들이 있다. 최근 나는 자문위원들이 그동안 분과별로 나누어 작업한 내용을 차분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분과별로 차이도 있고 아직 의견을 모으지 못한 분과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크게 보면 애쓴 흔적이 뚜렷했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 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첫째, 이대로라면 이번 개헌은 그동안 문제되었던 사항들을 총망라하는 거의 새로운 헌법의 제정에 가까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짧은 시간에 그처럼 지난한 과정을 제대로 거칠 수 있을까. 특히 세계관적 대립이 불가피한 기본권 영역에는 얼핏 보아도 국민 사이에 논쟁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 여럿이다. 가치 투쟁일수록 타협이 어려운 것은 상식이 아닌가.

둘째,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서 과연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개헌안에 담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지금 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1987년 헌법에 담긴 권위주의 시대의 유제를 청산하고 민주정치를 심화하며 권력분립을 체계화하고 복지국가의 기초를 놓는 일이다. 물론 이 밖에도 개헌안에 담으면 좋을 내용은 많겠지만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가 시대정신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한데 분과별 의견을 모아서인지 자문위원들의 작업 내용에선 자꾸 초점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자문위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회 개헌특위에서 헌법개정안을 성안할 권한과 책임은 오로지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개헌특위에 참여한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제부터 자문위원들의 작업 내용에서 실제로 타협이 가능한 사항을 추려내고,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담아 실현 가능한 헌법 개정안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요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에 관해 지금까지 여야 정당들이 보여온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단적인 예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인 헌법 개정작업을 추진하면서도 어떤 정당도 스스로의 이름으로 제대로 된 헌법 개정안 하나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난 1년 예상치 못한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이 점에 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고 주장하는 집권여당의 책임이 대단히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여야 정당들은 개헌특위 자문위원들의 성과가 결집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대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 비록 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국민은 모두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새로운 헌법하에서 국회와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구성하고 또 나눌 것인지에 관해 정치세력 사이에 스스로 만족스럽고 국민에게도 내놓을 만한 합의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과 정부형태 변경에 관해 여야 각 정당은 여전히 샅바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 지금 개헌과 관련해 우리 국민 모두가 마주하고 있는 난처한 진실이 있다. 통치 구조에 관한 합의가 없는 한 여야 각 정당은 도무지 개헌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척시킬 뜻이 없으며, 그 경우 개헌은 또다시 기약 없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이 직접 나서서 일단 개헌 작업의 양을 줄여주는 수밖에 없다. 통치 권력의 구성과 분배에 관해 지금 당장 여야 정당들이 합의하기 어렵다면, 이 문제는 일단 집권여당부터 당론을 모아 개헌안을 마련할 시간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대신 통치 구조와 크게 상관이 없는 영역, 특히 정치세력들이 누려온 통치 권력의 총량을 줄이는 문제에 관해서는 애초의 일정대로 내년 6월의 지방선거에서 개헌하면 되지 않겠는가.

획기적인 지방분권의 확대와 기본권 보장의 확대는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제도화하는 온당한 방향이기도 하다. 이 두 영역에서 국민의 광범위한 합의를 확보해 먼저 개헌을 달성한다면, 통치 권력의 구성과 분배를 둘러싼 정치세력 사이의 타협도 쉬워질 것이 명백하다.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방분권과 기본권부터 개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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