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백경원 구미무용협회장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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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4   |  발행일 2017-11-24 제35면   |  수정 2017-11-24
“다시 태어나도 춤꾼으로”…30여년 ‘구미 무용史’를 만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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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부터 구미에서 활동하며 구미무용사에 큰 획을 그은 백경원씨는 “다시 태어나도 무용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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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원씨가 ‘수건춤(정소산류)’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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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무용제에서 백경원무용단이 ‘진도북춤’을 추고 있는 모습.

#백경원 무용가는 경북무용인협회장(1990~1993년), <사>한국무용협회 경북도지회장(1993~2000년),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1989~2000년) 등을 지냈으며 제5회와 제15회 전국무용제 은상, 제2회 구미시문화상, 제38회 경북도문화상, 제1회 경북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무용협회 구미지부장, 백경원무용단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미 첫 무용학원과 협회·시립단 주역
어릴적 언니 백년욱 영향 춤 인생 첫발
1968년 언니의 첫 발표회 무대서 데뷔
90년 구미 첫 무용단 꾸려 대중화 앞장

“구미만의 色 묻어나는 작품 선뵈려 노력
50년 넘었지만 아직도 무대 서면 설레”
최근 언니 ‘수건춤’ 배우는 재미에 푹
‘무용가’ 代 이은 아들·딸 자랑스러워


‘구미의 무용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무용가 백경원씨(여·66)를 첫손에 꼽는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구미에 무용의 뿌리를 내리게 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구미에 첫 무용학원을 연 사람도 백씨고 한국무용협회 구미지부, 구미시립무용단을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이도 백씨다.

“춤은 내 삶이다. 춤을 출 때 너무나 행복하다. 다시 태어나도 춤을 출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어찌 보면 춤을 출 수밖에 없고 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주변이 온통 춤으로 채워져있기 때문이다. 그의 언니가 대구시무형문화재 제18호 ‘수건춤(정소산류)’ 예능보유자인 백년욱 선생(72)인 데다 그의 아들은 현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인 김우석씨(40)다. 딸 김지은씨(41·체리무용학원장) 역시 무용을 하고 있다. 그는 대를 이어 춤을 추는 아들과 딸이 너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춤이라는 행복을 알게 해준 언니에게도 감사하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날에도 언니와 함께 온 백씨는 언니를 마치 어머니 모시듯 극진히 대했다. 언니이기도 하지만 영원한 춤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그의 춤이 가지는 품격이 새롭게 느껴졌다. 언니와 그는 무용가에게 있어 춤만큼 중요한 것이 인품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제대로 된 인간에게서 제대로 된 춤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춤은 바로 마음, 정신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언니에게 춤을 배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언니가 5세 때부터 춤을 배웠기 때문에 저는 어릴 때부터 언니가 춤추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저와는 여섯살 차이가 나니까 언니가 늘 어머니처럼 돌봐주었습니다. 언니가 춤을 배우러 다닐 때 저도 자주 따라갔습니다. 언니가 춤추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저도 자연스럽게 춤을 배우게 됐지요. 정소산 선생과 언니에게 춤을 배웠고 1968년 언니의 첫 무용발표회에서는 정소산 선생이 직접 안무해준 ‘여인의 미’를 선보였습니다. 이것이 저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지요. 현재 대구콘서트하우스 자리에 KG홀이란 극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공연했습니다.”

▶구미에 오기 전 왜관에서도 활동했다고 했습니다.

“1980년대 초 구미에서 처음으로 무용학원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구미에 오기 전 왜관에서 10년 가까이 무용학원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첫 무용발표회도 1973년 왜관중앙극장에서 열었습니다. 구미는 물론 왜관에도 무용학원이 없었는데 제가 처음 문을 연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어려움이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무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버팀목이 된 듯합니다.”

▶구미의 무용사를 만들어나간 주역입니다.

“과찬입니다. 하지만 무용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구미에서 무용학원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 1990년에는 구미의 첫 무용단을 만들어 무용 대중화에 노력한 것은 맞습니다. 현재 구미에는 10개 가까운 무용단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제자들이 열심히 배워 무용단을 만들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1989년 한국무용협회 구미지부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맡았으며 그해 초대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로 발탁돼 11년간 활동했습니다. 이외에 한국무용협회 경북도지회장, 경북무용인협회장 등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전국무용제에서 2차례 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서 해외공연도 펼쳤습니다.”

▶과거에는 한국창작무용도 많이 선보였다 했는데 최근엔 전통춤에 힘을 쏟고 있는 듯합니다.

“창작무용, 전통무용 모두 매력이 있습니다.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 등으로 활동할 때는 창작무용 쪽에 힘을 쏟았습니다. 특히 구미의 문화와 정서를 무대화시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구미만의 독특한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을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이와 함께 전통춤도 꾸준히 익혀서 무대에 올렸습니다. 최근에는 언니의 수건춤에 빠져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춤을 정소산 선생에게 배웠는데 이제는 언니에게 배우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수건춤 외에 고인이 된 최희선 선생에게 ‘달구벌입춤(최희선류)’, 정명숙 선생에게 ‘살풀이춤(이매방류)’도 사사했습니다. 이처럼 전통춤을 탄탄히 익힌 것이 창작춤을 만드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최근 개인작품발표회 때 수건춤을 자주 추고 있습니다. 그 춤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정소산 선생에 이어 언니에게 배우고 있으니 수건춤과 저는 큰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소산 선생이 궁중무용가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수건춤은 민속춤이지만 궁중무용과 민속춤의 특징이 조화를 잘 이룬 품격 있는 춤입니다. 특히 춤출 때 무용가의 자세가 곧고 단아하면서도 무게감이 있습니다. 한국춤의 특징인 정중동의 미가 아주 잘 살아있는 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소산 선생이 생전에 춤은 ‘거미처럼 추어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움직이면서도 안 움직이는 것 같은 섬세한 손놀림과 발놀림이 이 춤의 큰 매력입니다. 흰 수건 한 장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직도 무대에 서면 설렌다고 하셨습니다.

“늘 처음 무대에 서는 것처럼 행복한 떨림이 가슴 가득 전해집니다. 춤을 춘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한 번도 춤추기 싫었던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춤을 추는 것이 재미있고 춤추는 사람의 모습이 아름다워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춤이 내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춤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습니다. 한국무용은 나이와 상관없이 출 수 있습니다. 늙어서도 출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오히려 춤을 오래 출수록 연륜이 묻어나서 춤의 품격이 날로 높아집니다.”

▶자녀들에게도 춤을 배우라 권했다고 들었습니다.

“딸은 어릴 때부터 저를 보고 자연스럽게 춤을 추겠다고 했고 아들에게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춤을 춰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아들의 신체조건이 무용가로서 딱 좋았던 데다가 어릴 때부터 무용에 강한 호기심도 보였습니다. 무용가로서 아직 제가 못 이룬 꿈이 있었는데 이런 꿈들을 아이들이 대신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이 경기도립무용단 주역으로 오랫동안 활동했고 이어 고향에 돌아와서 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로 활동하니 제가 아들의 진로를 잘 정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딸은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아들은 지난해 경상대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는 것도 어머니로서 참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그동안의 공연 팸플릿을 보니 공연 때 딸과 아들이 많이 도와준 것 같습니다.

“구미가 예전에 비해 무용이 활성화되었지만 아직도 좋은 무용수를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연출, 안무 등에서 조언을 해주는 등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서 무용에 대해 많이 배운다고 하지만 저도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젊은 무용수들이 가지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저에게도 때로는 큰 자극제가 되지요.”

▶앞으로 활동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주십시오.

“구미에서 제가 무용을 처음 시작한 것은 무용학원을 통해서였습니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것도 있지만 척박한 구미에서 무용을 활성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역량 있는 무용인들을 길러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후배와 제자들이 무용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덧붙여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구미에도 무용대학이 설립돼 더 많은 무용인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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