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구례 산동면 산수유마을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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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4   |  발행일 2017-11-24 제36면   |  수정 2017-11-24
노란 꽃 자리마다 붉은 산수유 송알송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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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마을 산수유 숲속에 옛 성벽 같은 돌담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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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음교를 건너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여기서 반곡마을로 가는 길, 천변 데크길 등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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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천의 징검다리. 다리 건너 산수유나무 한 그루가 기다림으로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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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리의 산수유 풍경길. 상위·하위마을과 멀리 지리산 온천랜드까지 훤히 보인다.


노란 꽃 진 자리마다 붉은 열매, 고통스러운 기색도 없이 늙어가는 잎들과 한없이 부풀어 오른 청춘의 과실을 한 몸에 지닌 수목들. 가을 산수유 숲을 거닌다. 숲은 누군가의 밭, 그러나 숲이라고 고집을 피울 테다. 나뭇잎 그늘의 소리 수선수선하고, 시냇물은 졸음에 겨워 하품을 하고, 갈대는 바람을 쫓고, 마을의 사나이는 마당을 쓴다. 가을은 더할 수 없는 조용함으로 부산할 뿐, 인간의 고집 따윈 아랑곳없다.

산골짜기 서시천변에 자리한 대음마을
천변은 온통 열매 주렁주렁 산수유나무
가지 맞닿아 이룬 터널 끝 성당 같은 광장
숲 헤쳐 나와 서거서걱 갈대와 징검다리

천 따라 평촌·반곡마을과 잇는 ‘꽃담길’
상위·하위마을 등 거치는 ‘풍경길’ 장관


◆ 대음마을의 산수유 숲길

말간 산길에 커다란 표지석 하나가 섰다. 대음마을. 그 옆으로 길은 스윽 미끄러져 내려간다. 길가는 낮은 돌담, 담 너머 감나무엔 감이 여섯 개. 인심이 좋다. 내려서면 천변의 마을, 집들은 물가에 조르라니 자리한다. 300여 년 전 남양홍씨가 정착해 이뤄진 마을이라 한다. 처음에는 큰 마을이 될 것이라 하여 ‘큰터’라고 했다. 대음으로 바뀐 것은 일제시대다. 산길 저쪽이 따뜻한 햇빛이 하루 종일 비친다는 대양(大陽)마을이니. 흠, 대음의 의미를 알 만하지만 이렇게 햇살이 좋은데.

대음교를 건너며 몸과 마음이 조급해진다. 마음은 다리 건너 은행나무로 내달리는데 눈은 모래 빛 갈대와 하늘빛 물과 하얀 바위에 붙잡힌다. 오래오래 물에 씻겨 모서리가 둥근 바위들이 평평하게 누워 있다. 봄날에는 어른, 아이 여럿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고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평상으로 삼는다. 가을의 너는 벌써 겨울처럼 서늘하게 빛나는데, 손대면 어쩐지 온기가 있을 것도 같다.

마을을 휘 둘러본다. 짙고 맑은 노랑은 하나다. 다리 건너 은행나무는 신목이라 하기엔 날씬하고 매끈하지만 우주를 짊어진 거인처럼 튼튼해 보인다. 나무는 제 그림자마저 노랑으로 만들어버리는 건강한 쾌활함으로 서있다. 은행나무 앞에서 길이 갈라진다. 저 멀리 높직한 석축의 은근한 유혹을 물리치고 천변 데크길로 든다. 천변은 온통 산수유나무다. 산수유 숲이다. 탱탱하게 익은 산수유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가지들이 숲 천장을 이룬다. 잎들은 푸름과 갈 빛이 뒤섞여 있고 붉은 열매는 완벽하다.

일단의 산수유 터널 끝에 조그맣고 둥근 광장이 열린다. 그 한가운데에 산수유나무 한 그루가 여왕처럼 서있다. 둥치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둘러선 산수유나무의 가지들과 맞닿아 광장은 성당 같다. 여기에서 길은 다시 갈라진다. 숲을 헤쳐 나오면 징검다리다. 바윗돌 위에 서서 다시 휘 둘러본다. 저 멀리 은행나무 노랑 우듬지는 깃발처럼 우뚝하고 지나온 길의 산수유나무들은 무성한 잎 그늘이 열매를 감췄다. 갈대는 목이 말라 서걱서걱한다. 다리 건너 산수유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기다림처럼 앉아 있고 산은 그 크고 아름다운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꽃 피면 좋아.” 지나시던 마을 할머니 툭, 말씀하신다.

◆ 산동 산수유마을, 산수유 길

대음마을은 구례 산동면 대평리(大坪里)의 자연부락이다. 산동(山洞)은 글자 그대로 산골짜기로 오래전부터 산수유 마을로 이름 나 있다. 산수유문화관과 산수유사랑공원이 들어서 있고 골짜기 곳곳을 이은 산수유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특히 산수유나무가 밀집해 있는 곳이 대평리와 위안리 일대다. 지리산의 품에 폭 안긴 두 마을은 작은 고리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묘봉치, 만복대, 다름재, 염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염재봉에서 남서쪽의 투구봉으로 뻗어 내린 능선 사이의 가파른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대평리의 산수유 길은 1코스인 ‘꽃담길’. 천 따라 들어선 평촌, 대음, 반곡마을을 잇는 길이다. 정성으로 야무지게 쌓은 돌담도 멋있지만 꽃 계절이면 꽃이 담이고 꽃이 벽이다. 천은 서시천(西施川)으로 섬진강의 제1지류다. 구례군의 산동면, 광의면, 용방면, 마산면, 구례읍을 두루 거쳐 흘러 구례분지의 젖줄이라 칭해진다. 어느 면 어느 길에서 보아도 서시천은 놀랍다.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의 아름다움이 이 정도였을까, 과연?

대평리 위쪽 산봉우리와 가까운 마을이 위안리다. 상위 마을과 하위마을 등을 두루 거치는 산수유 길은 3코스 ‘풍경길’. 지대가 높아 저 아래 지리산 온천 랜드까지 훤히 보인다. 상위마을은 산동의 마을 중 산수유 생산량이 가장 많고 산동에서 유일하게 지리산 관광휴양지 민박촌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꼭대기에는 산유정 정자가 자리하고 그 아래에 산수유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위안리에도 돌담이 많다. 산수유 숲속에 옛 성터처럼 남은 돌담도 있다. 안내판도 없이 숨겨진 듯했던 숲속의 돌담길은 이제 알음알음 소문이 나 꽃철이면 줄 서서 누리는 길이 되었다 한다. 10년 전 즈음 눈 내린 상위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선명한 새의 발자국 아래에 있던 산수유 열매들, 나무에 매달린 채 검붉게 쪼글쪼글해진 산수유 열매들을 보았다. 값싼 중국산 산수유 수입으로 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었던 때라고 기억된다. 그때조차도 산수유마을은 아름다웠다. 여전히 몹시 아름답다. 지상의 삶을 잊은 꿈꾸는 이방인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남원 지나 남원JCT에서 27번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 순천 방향으로 가다 구례화엄사IC로 나간다. 용방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산동으로 북향한다. 남원IC에서 내려 구례방향 19번 도로를 타도 된다. 밤재를 넘으면 산동이다. 지리산 온천랜드로 들어가면 일대가 모두 산수유마을이다. 지리산온천로를 따라 가다 평촌교 지나 평촌로로 가면 대음마을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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