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절제의 미덕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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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7   |  발행일 2017-11-27 제31면   |  수정 2017-11-27
[월요칼럼] 절제의 미덕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왜일까. 직립인간을 뜻하는 ‘호모 에렉투스’가 시발(始發)일 게다. 침팬지·고릴라 따위가 흉내를 내보지만 그건 불완전한 직립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고 완전한 직립 생명체다. 두뇌의 탁월한 성능과 크기 또한 인간의 수월성(秀越性)을 웅변하는 척도임이 틀림없다. 인간의 강한 절제력도 다른 동물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영역이다.

인간끼리도 절제력에 따라 우열이 가려지고 성패(成敗)가 판가름난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도 기실은 절제력 예찬이다. 1966년 미국 스탠퍼드대 월터 미셸 교수는 653명의 4세 어린이를 모집해 마시멜로 실험을 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고 15분간 참으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기다렸다. 15분을 참지 못하고 먹어치운 어린이가 있었는가 하면, 기다렸다가 2개의 마시멜로를 먹은 어린이도 있었다. 미셸 교수는 10여년이 지난 후 이들을 추적해 성취도를 조사했다. 2개의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학업 성적이 훨씬 우수했고 건강도 더 좋았다고 한다.

스포츠에도 절제는 유효하다. 호날두 같은 세계적 골게터들이 똥볼을 차지 않는 이유는 뭘까. 힘을 절제하고 조절할 줄 알기 때문이다. 손흥민도 슛을 날릴 때 똥볼이 거의 없다. ‘음악계의 제우스’로 수식(修飾)됐던 카라얀의 무기도 절제였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은발을 날리며 지휘하는 카라얀의 절제된 표정과 몸짓에 연주자와 청중은 최면에 걸린 듯 빨려 들곤 했다. 전성기 땐 카라얀에게 중독된 유럽 중년 여성들이 그의 연주를 졸졸 따라다닐 정도였다. 땅을 치는 통곡보다 비통함을 삼킨 채 흐느끼는 모습에서 더 큰 심연의 슬픔이 느껴지는 것도 절제가 갖는 내면의 호소력 때문이리라.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호기롭게 출발했던 문재인정부도 어느새 6개월이 훌쩍 지났다. 야당에선 ‘쇼통’이라고 비난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과 감성정치는 지난 정부에 비하면 일취월장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무하고 평범한 시민에게 고개를 숙이며 권위를 내려놓는 모습은 신선했다. 정책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람 중심 경제’를 기치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도모했다. 그리고 ‘적폐청산’은 여전히 논쟁 중인 이 시대의 가장 까칠한 화두다. 우리가 친일청산을 제대로 했더라면 더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됐을 개연성이 높고 ‘골고루 잘사는 경제’가 더 일찍 착근됐을지 모른다. 이는 적폐청산의 당위성을 일깨운다. 적폐를 그냥 덮으면 미래의 부역자를 막지 못하고 공정한 사회 시스템도 요원해진다. 알베르 카뮈는 “오늘의 죄악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적폐청산도 절제가 필요하다.

사정 칼날이 정치보복으로 비쳐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고 별건수사를 지양해야 한다. 전방위 사정보단 곪은 곳만 도려내는 핀셋 수술이 바람직하다. 정책 변화의 속도조절과 정책 믹싱도 절실하다. 최저임금은 급속하게 올릴 경우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효과를 경계해야 하며,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를 변경해 정책 본연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또 사회안전망 강화와 노동 유연화를 함께 추진해야 구조개혁이 가능하고 혁신성장의 동력도 얻을 수 있다.

살육과 전쟁,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전국시대를 살았던 장자. 그의 광대무변한 사유(思惟)는 거대한 새 붕(鵬)에 대한 상상력에서 오롯이 노정된다. 구만리를 나는 새 붕이 날개를 퍼덕이면 파도가 삼천리 치솟고 태풍이 몰아친다고 묘사했다. 장자와 함께 도가(道家)를 형성한 노자는 절제의 덕목이 녹아 있는 처세훈을 도덕경에 남겼다. ‘직이불사(直而不肆) 광이불요(光而不燿)(곧으나 너무 뻗지는 않고 빛나되 눈부시게 하진 않는다)’.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원칙적으로 옳다. 하지만 곧되 너무 뻗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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