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車在馬前(거재마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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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8   |  발행일 2017-11-28 제31면   |  수정 2017-11-28
[CEO 칼럼] 車在馬前(거재마전)의 마음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다사다난했던 2017년도 끝자락을 향해 달리고 있다. 승리를 목표로 출발선에 선 경주마처럼 정유년(丁酉年) 첫 일출을 바라보며 크고 작은 꿈을 품어봤지만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면 못 이룬 것에 대한 서운함이 더 큰 게 인지상정이다.

작심한 모든 일이 결실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냐만 실상 그런 사람이 흔치는 않다. 이런 연유로 연말연시면 부쩍 공감이 가는 글귀가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아쉬움은 담아 보내고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의미다.

인간은 ‘후회’를 먹고 산다고 한다. 1년의 마지막인 12월이 되면 성과에 만족하기보단 바삐 흘러버린 시간에 후회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후회는 조속히 떨쳐 버려야 한다. 막연히 흘려 보내기에는 여전히 남은 시간과 고마움을 표할 사람, 둘러볼 이가 많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것도 인생의 정답은 아니다. 호스피스 전문의인 오츠 슈이치가 저술한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만 살펴봐도 그러하다. 안타깝게도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왜 죽도록 일만 했을까’였다고 한다.

조금만 눈과 귀를 돌려봐도 우리 주변엔 쉽게 실천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는 소중한 것들이 가득하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나 ‘여행을 떠났더라면’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등이 대표적이다. 눈앞의 일에만 빠진 채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면 여타 사람처럼 후회로 얼룩진 한 해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12월은 상당히 의미 있는 달이다. 추위로 인해 육체적 활동이 줄어들지만 그만큼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괜히 12월을 사색의 달이라 칭하는 게 아니다. 한 달 남짓이지만 올 한 해 뿌린 씨앗이 제대로 결실을 맺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물론, 수백 가지 소소한 일을 챙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다가올 2018년을 미리 준비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자고로 거재마전(車在馬前)이라 했다. 경험이 없는 말로 수레를 끌게 하려면, 먼저 다른 말이 끄는 수레 뒤에 매어 따라다니게 하여 길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작은 일에서부터 훈련을 거듭한 뒤에 본업에 종사하게 해야 함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경주마의 세계에서도 거재마전은 통용된다. 17연승의 ‘미스터파크’부터 최초의 삼관마 ‘제이에스홀드’, 국산마 최초의 그랑프리 우승마 ‘새강자’ 등에 이르기까지 95년의 한국경마 역사 속에는 수많은 명마(名馬)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그 전설의 시작은 아주 기본적인 ‘끌기’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말(馬)이 아닌 사람이 직접 고삐에 매듭을 걸어 말을 길들인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지만 이들 모두 끌기, 다리 들기와 같은 기초훈련 덕분에 튼실한 골격과 근육을 형성할 수 있었다. 만약 이와 같은 과정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재능을 타고났다 한들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급변하는 21세기 속 우리는 정체를 두려워하는 탓에 뭐든 빨리빨리 하는데 익숙해져있다. 그러다 보면 기본을 건너뛰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집을 짓기 위해 기초공사가 중요하듯 일과 삶에 있어서도 계획을 세우고 기초를 다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진정으로 2018년을 올해보다 더욱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거재마전의 마음가짐으로 작지만 기본적인 일부터 미리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뿐 아니라 올 겨울 지독한 외로움과 추위로 힘든 시기를 보낼 이웃도 함께 살펴봤으면 한다. 지난 11월22일 과천에 위치한 렛츠런파크 서울에선 300여명이 모여 정성스레 김장김치를 담갔다. 과천을 포함해 안양, 군포 등 경기도에 있는 불우한 이웃들이 겨울을 포근하게 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수많은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과 따뜻한 마음이 한데 모인 덕분에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1개월 동안 나를 돌봐주고 염려해주신 지인들과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베푸는 세밑이 되면 좋겠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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