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강원 삼척 장호항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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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  발행일 2017-12-01 제36면   |  수정 2017-12-01
케이블카로 바다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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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개암 앞 갯바위 사이에 돌고래 상이 있다. 장호리의 별명이 고래무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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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개암과 주변의 갯바위들. 소나무 울창한 알개암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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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깊고 잔잔한 장호리 내항. 케이블카가 내항의 하늘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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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절벽 앞 해안을 따라 밝은 화강암의 내독암, 미역너느바위, 독바위 등이 이어진다.

기대 그 자체가 되는 장소가 있다. 이런저런 소문과 단편적인 이미지들은 기대를 향한 모든 준비를 갖추게 한다. 그리고 만난다.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바위들, 그것은 대지와 바다와 똑같은 항구성을 가지고 대범하고도 도도하고 동시에 다정하게 펼쳐져 있다. 기대는 시선이 된다. 경청이 되고 호흡이 된다. 급기야 갈증이 된다. 뛰어들지도 몰라!

육지 향해 둥글게 파고 든 천혜의 장호항
곶의 소나무 울창한 절벽 위 케이블카 역
등대 위를 날아 용화리까지 874m 오가

바위 엇갈리며 얕고 맑은 물길 여는 협곡
고래무덤 이야기와 알개암 마루의 정자
200여m 해안 따라 기암괴석 절리 장관


◆장오, 장울, 장호

보이는 마을의 규모에 비해 정박한 배들이 많다. 물양장도 넓고 방파제도 길다. 항구의 수심이 깊어 배들이 드나들기 좋단다. 어판장도 넓다. 물기 촉촉한 바닥에 어판장 기둥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한낮, 어부들의 일은 이른 아침에 이미 끝났다. 지금 계절이면 마을 곳곳에 오징어가 널려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어느 담 낮은 집 빨랫줄에 열댓 마리 오징어가 꾸덕꾸덕 말라갈 뿐. 마을 점방 앞에 약간의 고구마와 건어물들이 널브러져 있다. 호객의 소리는 없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3월 해양수산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다. “삼척 장호리 마을은 꼭 방문하고 싶다.” 이곳은 삼척 장호리다.

어판장에서 방파제의 양 끝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둥치 큰 나무를 껴안은 것처럼, 방파제가 껴안은 내항은 크고 잔잔하다. 원래 항만의 형상이 수컷 오리(雄鴨)와 비슷해서 장울리, 장오리라 불렸다. 지명의 한자어는 이곳저곳이 조금씩 다르다. 대개 감출 장(藏), 씩씩할 장(莊), 막힐 울(鬱), 나 오(吾), 다섯 오(五) 등이 조합되어 있는데, 원래 지형이 안온했을 거라 짐작된다. 지금은 장호리(藏湖里)다. 이 역시 안온한 바다와 연결된다. 예부터 육지를 향해 둥글게 파고들어온 지형을 활용한 천혜의 항구가 발달해 파도가 높거나 태풍이 불면 인근 해역의 배들은 모두 이곳으로 피항했다고 한다.

마을 남동쪽에 높직한 언덕이 있다. ‘장호1리 너머 연안에 당두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이 아닐까 싶다. 머리처럼 봉긋한 곶이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난 절벽이라 당집이 있었을 법도 하다. 언덕 위에 해상 케이블카 역이 들어서 있다. 약간 느슨하게 걸린 케이블카 선이 어판장 위를 지나 내항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빨간 등대 위를 날아 저편으로 이어져 있다. 저편은 용화리다. 최근에 운항을 시작했다는 케이블카는 용모양의 역사 2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다. 길이는 874m, 바닥이 투명한 선샤인호와 선라이즈호가 바다 위를 천천히 가로지른다.

◆바다의 협곡, 고래무덤

방파제를 지나면 전혀 다른 바다가 펼쳐진다. 기암의 군락이다. 항구의 그리 깊던 수심은 이곳에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아진다. 무지개모양의 나무다리가 바위섬인 알개암에 걸쳐 있다. 다리 아래 바다는, 유리알처럼 맑고 에메랄드처럼 빛난다. 녹주석 같은 해초들이 윤슬에 연마되어 바다는 그대로 보석상자다.

바위가 엇갈리며 물길을 연다. 바다의 협곡이다. 돌고래상이 갯바위 사이에 놓여 있다. 옛날 마을의 별명이 ‘고래무덤’이었다고 한다. 장호 앞바다로 유영해 온 고래들이 기암괴석에 갇혀 나가지 못한 채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래잡이가 금지되기 전까지는 고래해체장이 있었을 만큼 어업이 성행했다고도 한다. 또 다르게는 지어낸 이야기라는 말도 있다. 2003년 드라마 ‘태양의 남쪽’에서 주인공 최민수가 장호항을 바라보며 ‘고래무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만들어진 상상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사실도 비극의 매혹을 이길 수 없다.

고래의 매끈한 등 너머로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장호항 방파제와 갯바위는 낚시로 유명하다. 가을과 겨울로 접어들면 감성돔, 학꽁치, 황어 등이 성하단다. 봄부터 겨울까지 꾸준히 많은 것은 우럭과 노래미. 입질도 쉽게 붙어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손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20여 년 전 처음 느껴보았던 그 손맛이라는 것,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가 마지막이긴 하지만.

알개암을 오른다. 바위틈에서 자라난 소나무들이 제법 울창하다. 섬 마루에 정자가 있다. 중국인 소녀들이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들이 간 뒤 캄보디아에서 온 듯한 대가족이 조용히 동해를 차지한다. 겨울 동해를, 그들이 떠난 후에야 망망한 동해를 갖는다. 선미에 서서, 한없이 뒤처진 채로, 항해를 하는 듯하다.

◆협곡을 즐기는 다양한 법

절벽 아래를 따라 휘도는 길로 나가자 바다 쪽으로 기울어진 알개암의 절리가 선명히 보인다. 그 남쪽 해안을 따라 내독암, 미역너느바위, 독바위 등이 이어진다. 밝은 색의 화강암이다. 주상절리를 따라 발달한 해식노치도 곳곳에 보인다. 물은 여전히 맑고 얕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200여m 구간의 해안은 수심이 1m 미만이며 연중 적절한 수온대를 형성해 다양한 어자원이 서식하고 있다.

낮은 수역이 넓다보니 예부터 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수경으로 바다 밑을 보며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그 사각형의 투명 수경의 이름이 창경, 창경으로 고기 잡는 것을 창경바리라 한다. 지금도 창경바리로 살아가는 어부들이 있다고 한다. 예전 장호항의 어촌 체험 프로그램은 창경바리와 미역 건조 정도였다. 피서객들의 호응이 미미하자 2008년부터 기존의 어촌 체험을 폐지하고 스노클링과 투명 카누, 배 낚시 등 다양한 해양 레저를 도입했다. 해안 산책로에는 맨발체험장과 인공 암벽장도 들어섰다. 이제 여름이면 장호리 바닷가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보통 장호항을 ‘한국의 나폴리’라 부른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나폴리는 바라보기에 좋다. 한국의 나폴리는 뛰어들고, 젖고, 만지고 싶은 곳이다. 바다의 윤슬에 종아리를 내맡기고, 해초의 보드라운 살결에 몸을 부비고, 바위의 절리를 손끝으로 쓸어보아도 좋다. 그저 가까이 마주 보아도 좋고, 하늘에서 내려다보아도 좋다. 무엇을 하든, 좋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타고 포항으로 나가 동해대로를 타고 계속 북향한다. 강원 삼척에 들어선 후 약 13㎞ 가다 신남교차로에서 장호항길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한국의 나폴리, 장호항’이라는 마을 입구에 닿는다. 스노클링과 투명 카누 등의 체험은 매년 5월에 시작된다. 바다 낚시는 1인당 3만원 선으로 낚싯대와 미끼 등은 무료다. 삼척 해상케이블카는 성인 1인 기준 1만원이며 주변에 카페와 전망대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인공 암벽장은 초급자 코스와 중급자 코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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