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꾼’ 지성役 현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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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  발행일 2017-12-01 제43면   |  수정 2017-12-01
“사기꾼만 속이는 사기꾼…대사로 어떻게 장난치고 놀까 고민 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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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에서 현빈이 맡은 지성은 남들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비상한 두뇌를 지녔다. “의심은 해소시켜주면 확신이 된다”는 신념으로 사기꾼만 골라 속여왔던 그는 전작 ‘공조’에서의 말수 적은 철령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쯤 되니 최근 오락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는 그의 행보에 궁금증이 생긴다. ‘나는 행복합니다’(2008), ‘만추’(2010),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2011) 등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작가주의적 성향이 짙고, 여백이 느껴지는 작품에 천착해왔던 것과 비교해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변한 건 없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20대 때 운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났고 덕분에 의미나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하게 됐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작품이 더 끌렸지만 지금은 관객이 극장에서 편히 즐기고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칙한 상상력과 예측을 벗어나는 줄거리로 오락적 재미를 추구한 ‘꾼’은 그 점에서 현빈이 생각하는 ‘새로운 도전’에 제대로 부합한다. ‘꾼’은 검사와 사기꾼이 얽히고설켜 희대의 금융 사기꾼을 잡는 과정을 숨 가쁘게 따라가는 하이스트 무비다. 성실하고 올곧은 이미지였던 그가 사기꾼 캐릭터로 옷을 갈아입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몸보다 말이 앞서는 지성 캐릭터는 그가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유형의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타짜가 타짜를 알아보듯 장창원 감독 역시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극 중 지성의 모습에서 현빈을 발견했다.


“비슷한 모티브 영화와 다른 전개·결론
반전의 재미에 끌려서 시나리오 선택”
이전과 달리 무거움 대신 가볍게 연기

“대사 통해 천재적 사기꾼 캐릭터 살리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의 대사들
힌트 등 관객 상대로 장난치기 시도도”



▶‘꾼’은 장르나 소재 측면에서 ‘마스터’나 ‘원라인’ 등과 비슷하다. 어떤 점이 끌렸나.

“반전의 재미가 있었다. 각 캐릭터의 사연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들이 만나서 일을 해결하는 방식도 기존 영화들과는 달랐다. 공교롭게도 내가 ‘꾼’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이 모티브와 비슷한 영화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결론이 전혀 달랐다. 또한 개인적으로 전작 ‘공조’에서의 절제된 이미지를 벗어나 좀 더 풀어지고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조’와 ‘꾼’, 그리고 이후에 소개될 ‘협상’ ‘창궐’ 등을 보면 예전에 비해 상업적 코드가 짙은 영화들이다. 취향이 바뀐 건가.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뭔가 여운이 남거나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더 많이 선호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 쪽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던 건 아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존에 접해보지 못한 다름에 대한 도전은 배우로서 늘 생각하고 있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최근 힘들고 복잡한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은 가급적 머리를 비우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기를 원할 것이다.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연기와 대중이 원하는 나의 극 중 모습은 작품 선택 시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보면 요즘 선택은 후자 쪽에 가깝다.”

▶지성은 사기꾼을 속이는 사기꾼이다. 이 캐릭터를 위해 준비한 게 있다면.

“특별히 준비한 건 없다. 대신, 장면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사기꾼이라는 역할 자체가 다른 작품과 중복된 부분이 있지만, 사기꾼이 사기꾼에게 사기 친다는 점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달랐다.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됐는데, 여건상 순차적으로 촬영이 진행될 수 없었기에 앞 상황과 뒤 상황이 튀지 않도록 항상 수위조절에 신경을 썼다.”

▶특수분장도 눈에 띄었는데 어땠나.

“힘들었다. 3~4번 테스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새로운 방식으로 다른 얼굴을 조합시켜 그중 어울리는 걸 찾아냈다. 한 번 분장하는 데 2~3시간이 걸리고 실제 안면근육과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찾아낸 얼굴들이 완성본에 나온 것이다. 한번은 가면을 쓴 채 밥 먹으러 나간 적이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특수분장한 것인지 전혀 몰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재밌었다.”

▶성대모사도 실제로 한 건가.

“대부분은 실제 내 목소리다. 촬영할 때는 내가 따라 하려고 했던 허성태 배우 목소리를 연습하고 녹음기로 녹음했다. 다행히 그분 목소리도 나처럼 저음이라 따라 할 수 있었다. 극 중 녹음기를 통해 나오는 건 내 목소리지만, 일부는 감독님이 후반작업을 통해 허 배우의 목소리를 사용했다고 들었다.”

▶지성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변화되는 인물이다. 어떻게 설정해서 캐릭터에 접근했나.

“지성은 신분증 위조 기술자인 아버지를 둔 탓에 어릴 적부터 사기꾼 기질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친구다. 아버지가 누군가에 의해 자살로 위장돼 죽임을 당하고, 그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야기의 시작이자 그가 본격적으로 캐릭터의 색깔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일단 캐릭터에 유연함을 플러스시켰다. 이를 통해 상대방을 만날 때, 계획을 짤 때, 목표를 향해 진행할 때, 좀 더 배짱 있게 움직이려고 했다. 사기꾼의 등을 치는 사기꾼이니만큼 그 세계에선 상도덕도 없는 인물인데, 그 점에 방점을 찍었다.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전 작품들과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점이 달랐나.

“지성은 상당히 머리가 좋은 친구라는 설정하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주로 대사를 통해 이를 보여주게 되는데 정보전달이 주목적일 때가 있고, 힌트가 될 만한 것도 있고, 때론 그냥 지나칠 부분도 있다. 그리고 관객을 상대로 장난치기를 시도했던 것도 달랐다.”

▶최근 모 인터뷰에서 연기에 완벽을 추구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모든 걸 조금씩 내려놓으려 한다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그냥 한 방향만 고집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 수 있는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고, 설령 다른 방향으로 간다 해도 그게 꼭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결정되면 배우, 스태프, 제작자, 투자자 등 영화와 관련된 많은 인원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진한다. 때문에 카메라 안에 있을 때는 최고는 못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그분들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고, 나중에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어찌 보면 배우로선 당연한 마음가짐인데 그걸 너무 의식한 나머지 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힘들게 했다. 물론 연기에 대한 열정과 목표가 바뀐 건 아니다. 다만 일의 진행에 있어서 스스로 여유를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의미다. 그렇게 해야 일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차분한 성격인데 지성은 밝고 깐족거리는 스타일이다. 연기하면서 어색하진 않았나.

“지성도 완전히 나에게 없는 모습은 아니다. 친한 친구들과 만나면 간혹 나오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사를 가지고 어떻게 장난치고 놀아볼까에 대해 고민을 좀 했던 것 같다.”

▶당신은 어떤 ‘꾼’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꾼이라고 할 만한 건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질문꾼’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내가 ‘왜’라는 질문을 되게 많이 한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촬영현장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대한 피드백이 안 오면 해야 할 이유와 타당성을 찾지 못한다.”

▶그동안 공백 없이 영화와 드라마 출연을 이어가고 있다. 군 제대 후 더욱 행보가 빨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집중력이 분산되는 게 싫어 한 작품이 끝난 후 차기작을 선택했는데, 작년에는 공교롭게도 네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사실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한 작품을 하면서도 다른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재밌을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여러 작품이) 내 옆에 와 있었다. 힘들다고만 생각한 일이었는데 막상 닥쳐보니 하게 됐다. 오히려 20대 때보다 모든 일에 있어 좀 더 진취적이고 과감해지는 것 같다. 지금도 ‘창궐’을 촬영 중인데 이렇게 ‘꾼’ 인터뷰를 하면서 촬영현장에서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차츰 여유와 요령이 생기고 있다.”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뭔가 나만의 삶과 자유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있다. 그런 부분에선 익숙해졌다. 가끔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본 적은 있다. 아마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연기를 하고 있으니 내 꿈은 이룬 셈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이 일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건 없다.”

▶아직도 대중은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에서의 모습을 기억하고 좋아한다. 언제쯤 그런 장르에서 볼 수 있을까.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는 언제든 다시 하고 싶다. 그래서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을 같이 보고 있다. 다만 기준은 바뀌었다. 두 시간 내외로 담을 수 있는 소재는 영화로 하고,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처럼 더 많은 얘기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소재는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냥 ‘우리 옆에 있었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될 만큼 친숙하고 편안한 배우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덧붙여 내가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즐겁게 문화생활을 누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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