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열린 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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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2   |  발행일 2017-12-02 제23면   |  수정 2017-12-02
[토요단상] 열린 귀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이 1년 더 효력을 갖게 됐다. 양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논란이 한창이던 작년 11월23일 협정을 맺었다. 어느 한쪽이 파기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1년씩 연장된다. “일본이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고, 독도영유권을 계속 주장하는 마당에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2016년 12월15일 외신기자간담회)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바꿨다. 파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군사정보 공유’의 혜택을 누가 많이 보고 있는지를 조사한 뒤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협정 가서명 당시 같은 당 소속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트위터에 “마지막까지 매국질, 친일매국의 피는 못 속이는 모양입니다”라고 했다. 지도자로서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누가 군사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까. 굳이 따질 일도 없다. 특히 북한 관련 정보의 양국 간 격차는 그간 실적이 입증한다. 지난달 29일 북한 화성-15형 ICBM 발사도 초기부터 추적한 건 일본이었다. 김정일 아들 김정남이 살해되기 전 동선(動線)을 취재했던 것도 늘 일본 언론이었다. 해묵은 감정 때문에 일본과 어떤 관계도 진전시키지 않겠다면 모르되 ‘묻지마’식 반대부터 하고 보는 건 양식 있는 사람의 자세는 아니다.

시행착오는 이것만이 아니다. 성주에 ‘임시배치’돼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딱 그렇다. 사드는 전문가가 한나절만 시뮬레이션 해보면 답(答)이 나올 문제였다. 중국의 사드 반대 의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들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때문이 아니다. 일본에 있는 레이더만으로도 미국은 중국을 들여다볼 수 있다. 처음부터 중국은 바기닝 칩(bargaining chip·협상용 카드)을 가지려 했다. 덜컥 그 수에 넘어가는 바람에 중국이 꽃놀이패를 쥐게 됐던 것 아닌가. 한국이나 주한미군을 보호하려는 방어용 무기 배치를 이웃나라(중국)와 ‘협의’한다는 안보주권 포기 논란도 한국에선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전문가 눈에는 뻔한 일을, 불필요한 논란과 비용을 쓰고도 피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사드 문제다.

탈원전 문제는 또 어떤가. ‘20년 대계(大計)’인 에너지 정책을 아무런 검증 없는 주장을 근거로 바꾸려는 것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건설 계속’ 결론은 그 많은 소모전을 치르지 않고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원전과 화석 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해온 선진국의 경험을 들여다보면 문재인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노무현정부 때 사람들이 이명박정부 때 FTA 비준을 반대했다. 지금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불리했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무현정부의 후계 정부가 그에 맞대응하고 있다. 이 얽히고설킨 방정식은 또 누가 풀 것인가. 미국에 많은 수출을 하는 나라가 관세장벽이 없어지면 얼마나 좋아질 것인지는 굳이 계산을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경험칙을 바탕으로 한미 FTA를 밀어붙였을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주요 정책 중에 이런 것들이 많다. 구성원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현 정부 고위 관직을 맡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학생 운동권이나 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들은 정치나 정책 비판에 능하다. 대안 제시에는 매우 약하다. 이상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이상(理想)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이상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실천 대책(action plan)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운행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치자. 그런데 한 대 값이 5억원이라면 무용지물이다.

사람을 바꾸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현실적이지는 않다. 인사권이 그들에게 있어서다. 차선책 정도를 주문할 순 있겠다. 주변에 경험이나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쓰면 된다. 본인의 결격을 보완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열린 귀’가 중요하다. 문재인정부의 정치와 정책 결정권자 중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발견이 안 되면 발굴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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