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판사 수난시대’가 만성화되면…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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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4   |  발행일 2017-12-04 제30면   |  수정 2017-12-04
김관진 임관빈 석방 판사
與, SNS에서 융단폭격
적폐청산-정치보복 논란
옳고그름 판정 최후보루
흔들리면 악순환 되풀이
[송국건정치칼럼] ‘판사 수난시대’가 만성화되면…

특정 판사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일이 부쩍 잦다. 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 때 의혹의 핵심 당사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은 영장전담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와 비난댓글이 쏟아질 무렵부터 법조계 주변에선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결국엔 판사가 법리와 양심에 따른 판결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 될 거라고…. 최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진행되는 ‘적폐청산’(보수 야당에선 ‘정치보복’이라 칭한다) 수사에서 사건을 배당받은 법원의 일부 판사가 모욕을 당하고 있다. 이번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영장전담 판사는 물론, 피의자의 정당한 권리행사인 구속적부심에서 석방 결정을 내린 판사들도 비난의 대상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광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다.

신 부장판사는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신청한 구속적부심에서 “일부 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다”며 두 사람을 잇따라 석방했다. SNS에서 친정부 성향의 네티즌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신 부장판사 해임요구 청원글이 올라와 2만1천명(3일 오후 현재) 이상이 동참한 상태다. 여론몰이엔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들도 가세했다. 송영길 의원은 SNS에 신광렬 판사를 지목해 “우병우와 TK 동향, 같은 대학, 연수원 동기, 같은 성향”이라고 썼다. 우병우 전 수석과 신 부장판사는 경북 봉화 동향에, 서울대 법대 출신 사법연수원 동기다. 그러니 ‘같은 성향’이란 게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광역자치단체장(인천시장)까지 역임한 3선 국회의원의 논리(?)다.

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신광렬 판사가 작심하고 석방을 명한 거고, 법리가 아니라 소수의 정치적 공세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범계 의원은 자신이 ‘소수의 정치적 공세와 궤를 같이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비난한 신 부장판사와 동료판사 출신이다. 그도 신광렬-우병우 특수관계설’을 언급했다. 여당 중진 의원이 신 부장판사의 신상털기에 가담하는 사이에 우병우 전 수석의 핵심 측근이라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개인비리 혐의로 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논외로 치면 정치적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구여권 인물들이 줄줄이 감옥행을 피했다. 구속영장 기각이나 구속적부심 인용(석방)이 곧 무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SNS에선 일부 네티즌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법관을 ‘적폐판사’로 몰아가고 있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코드인사라며 야당이 지명에 반발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여론이나 SNS를 가장해서 재판 독립을 흔들려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그 직후 법원 내부에서 김동진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김관진, 임관빈 구속적부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 발언은 위선”이라며 여당 의원과 일부 네티즌 편에 섰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적폐청산-정치보복 논쟁을 넘어 실행에 들어갔고, 이로 인해 옳고 그름의 다툼이 극심한 때다. 그 최종 판정은 여론이나 정치 수단으론 할 수 없다. 결국 마지막엔 헌법과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법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법부의 저울이 여론과 정치논리에 흔들려 중심을 잡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여론몰이 재판이 관습으로 자리잡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힘을 이용해 반대편을 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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