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존을 버리고 삶을 선택하는 욜로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2-06   |  발행일 2017-12-06 제29면   |  수정 2017-12-06
[기고] 생존을 버리고 삶을 선택하는 욜로
주형일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얼마 전 한 고등학생이 수능 시험을 치르는 대신에 세계 일주를 떠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용기 있고 멋있는 행동이라고 말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수능을 치르고 대학을 간 뒤에도 얼마든지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는데 굳이 수능 대신 세계 일주를 선택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욜로(YOLO)’란 말이 유행이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는 영어 문장의 축약어다. 2010년대에 들어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표현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홍보영상에서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시사상식사전 등에서는 욜로를 미래나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나를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발 빠른 기업에서는 ‘욜로족’을 위한 상품들을 출시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욜로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면서 욜로를 즐기려다 ‘골로(GOLO)’ 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우려 섞인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진 돈의 한도 내에서 소비를 즐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이해되기에 우리 사회에서는 욜로를 소비문화의 한 형태로 환원시키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의 나를 위해 소비하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아낌없이 소비하라.’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주입하고자 하는 욜로의 모토다. 하지만 진정한 욜로는 그런 소비지상주의와는 정확히 반대 지점에 서 있다. 사실 욜로가 의미하는 바는 사회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이미 정해진 길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중·고교와 대학교를 가고,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것이 당연한가? 그것이 당연한 삶인가?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존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런 의문이 바로 욜로의 출발이고 바탕이다.

우리의 인생은 사회가 배분해 놓은 시간과 공간을 충실히 따르는 일로 점철돼 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주어진 시간 동안에만 논다. 그러면서 우리는 온순한 노동자, 수동적 소비자로 길들여진다. 욜로는 이런 인생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렇게 정해진 길을 기계처럼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욜로는 현재의 소비를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상황을 구축하라는 말이다.

욜로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N포세대’인 청년들이다. 그들은 인생 대부분을 자본주의 사회의 온순한 노동자가 되기 위한 훈육을 받는 데 바쳐왔지만 막상 노동자가 돼야 할 시점에도 여전히 내가 남들보다 더 온순한 노동자라는 것을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증명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운명에 내몰려 있다. 사회는 그렇게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다그친다. 그들은 이처럼 생존만을 강요하는 세상에 넌더리를 친다. 그들은 지겨움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그들의 넌더리는 폭발하기 직전이다.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사회는 그들의 관심을 어떻게 해서든 소비로 돌리려 노력한다. 지겨운가? 아낌없이 쓰면서 현재를 즐겨라. 이렇게 사회는 말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은 소비할 여력도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을 쥐어짠다. 최신 폰을 사라, 여행을 가라, 고급 레스토랑을 가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주형일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