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낙태죄는 규범조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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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6   |  발행일 2017-12-06 제30면   |  수정 2017-12-06
헌법불합치가 그럴싸해
원치않는 임신은 피하고
임신중절을 줄이는 것
임부와 태아 삶 무게 분담
함께 고민하는 기회 되길
[수요칼럼] 낙태죄는 규범조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박정호 변호사

청와대가 낙태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밝히면서 낙태죄 폐지 여부를 둘러싼 찬반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낙태죄를 유지하자는 쪽은 태아의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낙태죄가 폐지되면 임신중절 수술이 만연해질 것이라고 하고, 폐지하자는 쪽은 형벌로 다스릴 것이 아니라 지원으로의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임부가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르도록 그 삶을 뒷받침해 주지는 못하면서 임신하면 무조건 다 낳으라는 식은 국가나 사회가 여성들에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낙태죄가 임신중절을 줄인다는 입법목적을 다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언젠가부터 형법의 낙태죄 규정은 현실과 괴리되어 처벌의 여지만 남긴 장식품 같아진 지 오래다. 임신중절을 줄이겠다면 더 이상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으로 임부와 태아가 서로 대립하는 구도로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 다른 보다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임부와 태아 그 둘이 감당할 삶의 무게와 책임을 공감하는 데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게 진짜 국가나 사회의 윤리적인 태도일 것이다.

진정으로 태아, 여성 그리고 국가나 사회를 위한다면 누구든지 아이를 낳고 싶으면 낳을 수 있게, 낳고 싶지 않으면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누군들 생명이 소중한 줄 모를 리 없고, 다들 임신중절을 줄여야 하는 줄도 안다. 그러나 이제 추상적인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기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국가의 보육 책임까지 다양하게 얽힌 복잡한 사안이니 만큼 조급해하지 말고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공론화는 당장 심리 중인 낙태죄 위헌제청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5년 전 첫 판단에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위헌 의견 1인이 모자란 4인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위헌 정족수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태아의 생명권 존중’ 못지않게 ‘임부의 자기결정권 존중’ 의견 역시 팽팽히 맞섰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는 저울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신임 헌법재판소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태아의 생명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바로 임신한 여성”이라며 “그런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결정했듯 일정 기간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제한적 낙태 허용’ 가능성을 내비친 터라 더 그렇다.

생각컨대 낙태죄 유지 반대라 하더라도 전면 폐지 쪽으로 의견을 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합헌·위헌이라는 일도양단이 아니라 헌법불합치선언이 더 그럴싸한 결말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다양하게 얽힌 복잡한 사안이니 만큼 규범조화적인 해결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되며,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은 달성되기 어려워 보이는 반면, 그 때문에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어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면, 태아와 임부를 모두 위하는 방법이라 사람들은 훨씬 수긍하기가 쉬울 것이다. 물론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임신 초기의 낙태를 허용하더라도 임부가 낙태에 대해 충분히 숙고한 뒤에 결정할 수 있도록 배려함과 동시에 의학적으로 안전한 낙태시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입법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는 것, 임신중절을 줄이는 것 그리고 임부와 태아가 맞닥뜨릴 삶의 무게를 분담하는 것까지 함께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박정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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