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歷史와 삶을 위로하던 그 맛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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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33면   |  수정 2017-12-08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광주
20171208
‘전라도닷컴’이 제공한 전라도촌스러움을 대변하는 사진. 볍씨를 쥔, 짓물러버린 할매의 억센 손이 짠한 울림을 준다.

전라도스러움과 호남스러움은 뉘앙스 차이가 난다. 호남스러움은 전라도스러움보다 조금 풍족한 느낌이 전해진다. 한때 한국 쌀 생산의 40% 이상을 수확했던 호남평야 때문이리라.

누군 전라도만 생각하면 막막을 넘어 먹먹해진다고 했다. 가난의 공간, 학살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 그 공간에서 피어난 한의 소리. 진도, 보성, 고창, 남원 등을 축으로 한 남도소리는 광주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전국으로 확산된다. 춘향전에 나오는 ‘쑥대머리’로 한 시절을 풍미한 소리꾼 임방울이 괜히 광주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남도선율을 가요에 응용한 비련의 가수 김정호도 담양에서 태어났다. 그 소리는 늘 남도밥상과 동고동락했다.

‘전라도스러움’의 발원지는 어딜까? 전라도·남도·호남다움의 본적을 음식으로 그려내기 위해 지난주 ‘예향(藝鄕)의 고장’인 광주로 갔다.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권을 지날 때쯤 잠시 눈발이 흩뿌렸다. 이상하게 경상도권에서는 그렇게 큰 울림이 없었다. 그런데 삶의 신산(辛酸)스러움이 더 옹골차게 들어 박혀 있는 전라도권에서 봤을 때 더 ‘진경’으로 다가왔다.

1963년 대박난 수필 하나. 당시 29세였던 이어령이 발표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다. 한국인이 쓴 최초의 한국인론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 황량한 ‘황토정서’는 단연 전라도스러움의 아이콘으로 솟구쳤다. ‘황톳길’이란 시는 1960년대 문둥이 시인으로 잘 알려진 한하운과 김지하 시인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잉태된다. 이후 황톳길은 전라도 정서의 대명사로 확산된다.

조정에 포진된 갑질 세력과 수탈의 대상이었던 민초. 두 진영이 싸움을 벌였던 정읍 황토현과 공주 우금치 고갯마루 동학농민군의 핏빛 함성은 이후 광주학생의거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스며든다. 이 흐름을 받은 광주의 시인 문병란이 시 ‘직녀에게’를 토해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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