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무·배추’ 김치3종세트가 지켜온 밥상…보는 순간 침샘 찌릿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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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34면   |  수정 2017-12-08
■ 푸드로드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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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간 광주의 대표주막으로 명성을 이어갔던 영흥식당을 지키고 있는 임병숙 주모가 한가한 식당 한편에 앉아 취담을 엿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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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네집’의 가정식백반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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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 오리탕거리의 터줏대감 ‘영미오리탕’. 오리보다 미나리가 주연 대우를 받는다.

겨울의 해는 빨리 져버린다. 오후 5시가 됐는데 벌써 어둑하다. 첫날은 광주에 살고 광주에 죽는 두 명의 ‘광주쟁이’를 만났다. 광주의 대표 황토사학자로 등극한 올해 여든의 김정호, 그리고 뉴밀레니엄 삶의 화두를 전라도 뿌리찾기로 나선 월간지 ‘전라도닷컴’ 대표 황풍년. 둘이 꼭 가보란 허름한 식당이 몇 곳 있었다. 어쩌면 광주의 마지막 선술집이 될지도 모를 옛 전남도청을 지척에 두고 있는 ‘영흥식당’을 찾았다. 손광은 시인은 이 식당을 노래한 ‘영흥 주점 대학’이란 시를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았다. 이 시 덕분에 주모 임병숙(69)은 ‘총장’으로 불린다.

옛 전남도청 인근 31년 전통 영흥식당
가게 벽 자체가 지역 화가들 그림 작품
생선 굽는 두 연탄 화로 등 선술집 버전

백반에 제대로 녹아있는 전라도스러움
꼬막 등 24가지 제철 반찬 올리는 ‘예향’
40년 代 이은 손맛 ‘정애네집’ 가볼 만
유동 오리탕거리 터줏대감 ‘영미오리탕’
미나리·들깨초장 어우러진 환상의 맛


내가 찾던 바로 질펀한 남도버전의 식당이다. 밥보다 술이 더 어울리는 현재 광주 예술인들이 최고로 받드는 주막이다. 바로 옆에는 ‘예술의 거리’가 있다. 2008년 소설가 박문종이 선술집 순례를 한다. ‘선술집풍경’이란 책으로 묶어냈는데 읽어보니 광주스러운 술집이 총망라된 것 같다. 백운동 고흥집, 실내포장마차 쬐깐집, 금동 고흥집, 남광주시장 내 보성집, 운림동 완도집…. 10년 만에 사라진 식당이 적잖다.

영흥식당 앞은 정말 뒷골목답다. 가로등이 있다고 하지만 광주 골목의 질펀한 정서는 다 밝히지 못한다. 가게 앞에 연탄 화로가 두 개 정겹게 놓여 있다. 고등어는 사철 굽히고 겨울을 지나 4~5월에는 조기 새끼인 황실이, 6~7월엔 병어를 주로 굽게 된다.

임병숙 주모는 해남 출신. 1986년부터 31년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편 김진옥씨는 대파를 다듬는 등 아내를 도와 이런저런 식재료를 장만해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면 벽에 민화풍의 누드화가 인사를 한다. 현재 광주미술협회장인 나상옥의 작품이다. 누드화의 주인공이 잎새주를 들고 있다. 이밖에 강영균·문영호 등의 그림이 사면의 벽을 빼곡하게 채웠다. 멸종위기의 광주의 선술집 보호 차원이다. 이래서 광주가 예향이란 평가를 받는 모양이다.

난 주모에게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인 피조개 반 접시를 주문했다. 그걸 안주로 무등산 막걸리를 몇 잔 마셨다. 벌교참꼬막은 ㎏당 2만5천원선. 너무 비싸 피조개를 대신 내는 모양이다. 갓·무·배추김치가 세트로 나왔다. 갑자기 침샘이 열렸다. ‘그래, 이게 바로 광주의 맛의 출발점이야’라고 독백했다. 그 반응을 감지했던지 주모가 한마디 거든다. “광주가 김치의 고장이잖소. 그리고 젓갈의 고장이고. 젓갈보다 김치가 더 성할 것이요. 목포·나주는 홍어지만 광주는 목포만큼 홍어가 성하지 않소. 대신 가정식백반이 겁나게 강혀. 요 볼품없어 보이는 김치 3종세트, 요놈이 진정 광주밥상을 지켜주는 징헌 반찬이랑께.”

한때 이 골목은 전남도청, 동구청 등으로 인해 호경기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한 축을 잃었다. 주모는 식당을 받을 혈육이 없단다. 문을 닫으면 광주 주막사의 한 축도 쓰러지는 것이다.

한 사람만 들어가면 꽉 차버리는 소형 냉장고만한 화장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매직펜톤의 글씨가 남도정서를 조금 빗겨나간 광주비엔날레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한 번 째려본다.

◆ 광주의 가정식백반을 찾아서

가장 광주스러운 음식은 뭘까? 관광객은 대뜸 ‘광주오미(한정식, 김치, 떡갈비, 오리탕, 보리밥)’를 운운하는데 솔직히 그건 너무 용역 받아 만든 ‘관급밥상’ 같다. 역시 전라도스러움은 백반에 제대로 녹아있다. 관광객은 싫어하는 백반, 그게 아이러니컬하게도 광주의 숨결이라니. 동구 동명동 한옥게스트하우스 ‘신시와’의 꽃님씨(이현희) 대표와 함께 광주의 대표적 백반집인 호남동의 ‘예향’으로 갔다. 꼬막, 조기, 부침개 등 모두 24가지 반찬도 차진 포스지만 올해 일흔의 여주인 김봉심의 자태가 정말 펑퍼짐스럽고 남도다웠다. 밥상에 제철 기운이 없으면 그건 죽은 밥상이란다. 밥상에 계절이 없다면 그건 죽은 음식이다. 열 번 백 번 지당한 말씀. 반찬이 거의 즉석요리다. 해남군 황산면에서 태어나 1990년대 후반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녀가 ‘광주밥심의 원천’이란 생각이 든다.

밤에는 수기동의 ‘정애네집’에서 허기를 채웠다. 영흥식당 못지않게 후미진 골목에 들어앉아 있다. 관광객은 찾아오기 번거러울 것 같다. 정애는 2대 여사장 이가영씨의 모친 이름. 족히 40년을 끌고 왔는데 초창기에는 금동에서 장사했고 10년 전 여기로 옮겨왔다. 한 접시 3만원짜리 참꼬막을 시켰다. 그리고 매생이국도 맛봤다. 예향처럼 매일 반찬이 달라진다. 오리탕, 시래기된장국, 미역국, 콩나물국…. 밥 옆의 국도 매일 새로운 창법이다.

가정식백반집의 정서는 더 후미진 선술집과 소통된다. 토박이들은 거기서 세상 시름을 잊는다. 광주의 맛은 그걸 바탕으로 ‘광주5미’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광주5미 탐사에 앞서 광주시민의 힐링로드로 부상한 ‘푸른길’의 심장부인 동명동으로 갔다. 여기에는 숲길과 오붓한 골목, 카페거리가 공존한다. 동명동은 옛날 광주읍성의 서동문 밖에 있는 마을로, ‘동문외리’ ‘동밖에’ 등으로 불렸다. 무등산 자락에서 내려온 동계천을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었는데, 유력 인사들의 관사가 있던 윗마을이 지금의 동명동 카페거리다.

동명동 재생의 기틀이 된 건 푸른길. 시민이 주도해 경전선 폐철도를 산책용 오솔길로 바꾸었다. 광주역에서 광주천까지 8㎞ 남짓. 그 길 중심에 동명동과 산수동 등이 있다. 내가 투숙한 게스트하우스 신시와도 그 길옆에 있다. 지척에 있는 ‘고래집’도 퍽 재밌는 집이다. 서너 채 헌집을 사들여 라이브공연과 푸릇한 담론이 공존하는 멀티플렉스스타일 커피숍으로 편곡했다.

◆남도밥상 & 남도소리 & 남종화

자연 곰삭은 남도한정식, 남도가정식백반이 골목마다 진을 친다.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그곳은 갤러리였고 공연장이었다. 때론 오갈 데 없는 식객을 위한 여관방 구실도 했다. 전라도 풍류는 피아(彼我)를 불문했다. 초면이라도 금세 친해져 불콰한 유행가를 쏟아낸다. 말끝마다 ‘좋아부러~’가 연발됐다. 귀명창급인 단골의 육자배기 한 자락이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탁주에 딱 맞는 게미진 각종 김치·젓갈·꼬막·홍어·조기·낙지 등 제철 어패류, 거기에 매생이·미역·감태 등과 같은 해초류가 눅진해진 취객의 혓바닥을 깔끔하게 감싸준다.

흥이 오른 화가들은 벽과 장지문에 그림을 그렸다. 넉넉지 않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주모들은 물감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의 그림을 남몰래 사주었다.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면 그림과 글씨 몇 점은 어김없이 붙어 있다. 그 저력 덕분에 무등산 자락에 의재(허백련)미술관이 설 수 있었다. 한국 남종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의재미술관은 밖에서 보면 유리공간 위에 얹혀있는 단순한 형태의 블록상자처럼 보이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면 무등산 경치를 완상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미산 허형의 기운은 진도 운림산방에 머물다가 이내 광주로 스며든다. 광주에서 작렬한다. 1977년 작고한 의재 허백련의 화풍은 손자 직헌 허달재로 굽이쳐갔다.

광주일보 언론인 출신의 향토사학자 김정호. 광주의 시시콜콜한 향토사를 손금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광주의 윤경렬’로 불린다. 밤늦게 자기 서재를 찾은 기자를 위해 여든의 그가 ‘광주산책’ 등 10여 권의 책을 내밀었다. 광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서적이다. 음식에 관련된 항목을 집중적으로 읽어봤다.

광주의 맛도 결국 시장이 지키고 있다. 1970년대 광주의 3대 시장은 양동·대인·남광주시장. 대인시장은 광주역이 생긴 1920년 이후 역전 노점상으로 출발했다. 현재 양동시장이 가장 규모가 크다. 1913년에 생긴 송정역은 1981년 송정역시장으로 거듭났고 이제 핫한 관광시장으로 바뀌었다.

다음 날 점심때는 광주의 식문화와 대구의 식문화가 어느 정도 다른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유동 오리탕거리의 터줏대감인 ‘영미오리탕’으로 갔다. 근처에 영양, 풍년, 장성, 영일, 금산 등이 진을 치고 있다. 대구는 오리탕이 인기가 없다. 오직 로스구이에만 매달린다. 그런데 광주는 오리탕에만 몰두한다.

첫 숟가락을 떴다. 추어탕의 향이 도드라졌다. 단골들은 고기에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 것 같다. 미나리에 공을 더 들인다. 오리탕의 주연배우는 ‘미나리’. 그리고 미나리를 들깨국물에 익혀 찍어먹을 때 사용하는 들깨초장도 조연급. 주재료인 오리는 엑스트라급이다. 토란 줄기가 씹히는 걸 제외하곤 오직 들깨의 식감만 감지된다. ‘미나리미숫가루탕’ 같았다. 전주의 오모가리탕처럼 투박한 뚝배기로 탕을 끓인다. 탕에는 청국장 알갱이도 넣는다. 느끼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게 비법이다. 반찬 중에서는 삭힐 대로 삭혀진 갓김치가 인상적이었다. 영흥식당처럼 김치류가 맛의 중심을 잡아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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