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고불총림 백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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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37면   |  수정 2017-12-08
물 속에도 滿山 紅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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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와 백암산의 황홀한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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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의 명품으로 알려진 비자나무 숲의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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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아기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한 트레킹 로드.

빨간 아기단풍은 혼 불이다. 작고 예쁘며, 별을 닮은 아기단풍은 혼이고, 불이다. 가로수 역할을 하는 당단풍나무는 가슴 뛰는 가을의 정취다. 그냥 긴 호흡으로 걷기만 해도 저절로 기도가 되고, 자비가 된다. 저 빨간 노란 나뭇잎이 영혼을 물들이고, 한 생이 타오르며 절정의 시간에서, 소멸로 가는 그 마지막 아름다움을 본다. 길가에 갈참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30그루 갈참나무는 300년 나이테를 넘어선 노목이다. 우리나라 갈참나무 중 가장 수령이 오래된 700살 갈참나무도 있다.

길가에 연못이 보인다. 맑고 잔잔한 물 위에 낙엽이 떠다닌다. 물속에는 가을산과 단풍나무가 잠겨 있다. 저 물빛을 따라가면 가을산과 단풍 사이를 걷게 되고, 모든 고통이 환희로 바뀐다. 연못 위에 또 연못이 있다. 아름답고 단아한 쌍계루와 유난히 붉고 고운 단풍나무 위로 수려한 백학봉이 펼치는 풍경은 조선8경에 들어가는 명소다. 연못 돌담을 대칭으로 물에 어리는 반사 경치에 숫제 넋을 빼앗긴다. 이곳은 이미 알려진 포토 존이라 탐방객이 경쟁을 하듯 촬영에 몰두한다. 데칼코마니처럼 연못에 전사된 경치는 황홀과 감탄의 합주곡이다. 감각이 멍청해지고, 시간의 태엽이 멈추어진다. 숨이 멎는 듯, 미에 대한 패닉에 빠진다.

조선8景에 속한 쌍계루와 백학봉 풍경
연못에 전사된 가을빛 고운 단풍 경치
절정서 소멸로 가는 마지막 아름다움

백양사 극락보전의 단청도 단풍 빛깔
絶景인 학바위 중턱의 약사암 가는 길
천연기념물 5천그루 비자나무 숲 장관

◆백양사와 이뭣고 화두

쌍계루를 지나 지척에 있는 백양사로 간다. 입구 사천왕문의 ‘고불총림 백양사’란 현판 글씨가 선승의 묵언처럼 깊다. 불교의 키워드는 각(覺)이다. 우주는 시시각각 변하고, 그리고 그물망처럼 엉켜있다. 나 자신도 변하고 이어져 있는 다른 존재도 변화한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엉켜 변화한다. 그것이 고(苦)다. 선각자는 이것을 인생은 고해(苦海, 괴로움의 바다)라고 하였다. 이 고(苦)에서 벗어나는 게 각(覺)이다. 각은 내가 얻는 것이다. 일체유아(一切由我)다. 모든 것은 나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것이다. 깨달음도 어리석음도 나의 문제다. 그 많은 팔만대장경의 진리도 고(苦)에서 해방되는 깨달음, 즉 각(覺)의 길을 말해놓은 것이다.

보조법어(普照法語) 수심결(修心訣)을 보라. 망상(妄想)을 없애려고 하지 마라. 없애려고 하면 더 안 없어진다. 망상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돌로 풀을 누르는 것과 같다(여석압초, 如石壓草). 돌로 풀을 누른다고 풀이 없어지나. 풀이 옆으로 삐져나오고 그러다가 더 옆으로 번지고. 그러니까 깨달음이 더딘 것을 두려워하라(유공각지, 唯恐覺遲). 깨달으면 망상과 고통이 없어진다(각지즉무, 覺之卽無). 말하자면 불교는 각(覺)을 터득하는 공부다. 문 옆에 만암 대종사의 ‘이뭣고’가 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선(禪)을 하는데, 의제가 화두(話頭)다. 그중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시심마(是甚磨)라는 것이 있다.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에 나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이뭣고로 하여, 골똘히 찾으면 본래면목, 즉 참 나를 깨달아 생사를 해탈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참 나는 무엇일까. 이 문제는 내내 나를 괴롭힐 것이다.

백양사(白羊寺) 절 이름이 입술에 구른다. 백제 무왕 33년(632) 승려 여환이 창건하였다. 고려 덕종 때 정토사라 불리다가, 조선 선조 7년(1574)에 환양 선사가 법문을 하면 산에서 흰 양이 내려와 듣고 가므로 이를 기이하게 여겨 백양사로 고쳐 불렀다. 산문을 지나고 대웅전을 둘러본다. 대웅(大雄)은 석가에 대한 수많은 명호(名號) 중 하나다. 대웅전은 대 영웅 석가를 왕 중 왕으로 모신 궁전이다. 무력과 금력으로 이 세상을 평정한 영웅이 아닌, 자비심과 법력으로 이 세상을 구제한, 대 영웅이 계시는 궁전이란 뜻이다.

석가는 먼저 자신의 마심(魔心)을 항복 받았다. 자신을 정복하는 사람이 대 영웅, 즉 대웅(大雄)이다.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세속의 영웅을 왕이라 하지만, 큰 자비로 세상을 정복한 영웅은 대 영웅이고, 왕 중 왕이다. 여기에 비견되는 것이 예수다. 예수가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자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예수는 이를 사양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난 받는 사람을 구했다. 이스라엘 왕 자리를 물리친 예수는 왕 중 왕이 되었다. 대웅전은 법왕, 즉 부처님의 궁전이다. 여러 부속 건물을 탐방한다. 극락보전의 단청이 단풍처럼 아름답다. 절 마당에 국화 분으로 의상조사의 화엄법계일승도를 배열해 놓았다. 국화꽃 사이사이 법성게를 읽으며 걷는 보살들이 보인다. 그리고 백양사는 1996년 서옹 스님이 방장이 되면서 ‘참사람운동’을 시작했다. 수행자 모두 참사람이 되어 현재 인류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하자는 운동이다.

◆약사암과 영천굴 답사

사문을 나와 약사암 가는 길, 비자나무 숲을 지난다. 난대성 침엽수인 비자나무 5천 그루가 비경을 만든다. 천연기념물 제153호다. 그 적정이 흐르는 숲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말이란 화살과 같아서 사람 귀에 한번 박히면 힘으로 빼기 어려우니 가벼이 던지지 말라.’ 실로 명언이다. 사람이 짓는 열 가지 무거운 죄 중에 입으로 짓는 죄가 네 가지나 된다.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말만 조심해도 지옥의 화를 면할 수 있다. 이제부터 오르막을 오른다. 생각하며 오르는 길이다. ‘약사암 빨리 가면 30분, 천천히 가면 10분’이란 팻말이 나온다. 빨리 가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내용이 궁금하다. 빨리 도착하기 위해 천천히 걷는다. 약사암은 절경을 이루는 학바위 중턱에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한다. 고불총림 백양사와 단풍의 계곡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뷰 포인트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뻥 뚫리면서 탄산음료처럼 짜릿한 기운이 지나간다. 약사암은 병자를 낫게 하는 약사여래불을 모셔놓은 곳이다. 어리석은 삶은 순간순간이 모두 아픔이고 병(病)이다. 만병을 치료하는 명약은 깨달음이다. 그 명약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바로 불취외상(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다. 밖에 있는 얼굴을 보지 말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삼라만상이 맑은 거울에 비치듯이 비친다.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된다. 동체대비(同體大悲)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산길 위, 100여 m 지점에 영천굴이 있다. 천천히 걸어 영천굴로 간다. 굴 입구에 석간수인 약수가 있다. 수량도 많고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몸을 굽혀 쪽박으로 물을 뜨는데, 물 위에 얼굴이 순간 비친다. 맑은 물에 반사되는 자화상이다. 과연 참 나는 무엇일까. 영천 샘에도 스토리텔링이 있다. 조선후기, 호남지역에 유행병이 크게 돌아 백성의 참상이 말할 수 없었다. 전라감사 홍낙인이 당시 왕인 영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비답이 내려왔다. ‘영지(靈地)를 찾아 기도를 드려라’는 명이다. 이에 백양사 영천수를 영천굴 제단에 올리고 기도한 후, 환자에게 마시게 하니 유행병이 나았다. 전라감사 홍낙인이 보은의 차원에서 그곳에 암자를 짓고 영천암이라 하였다. 이제 남은 코스는 무언으로 걸으리라. 승찬대사 신심명(信心銘) 구절이 떠오른다. 단막증애(但莫憎愛)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사랑과 미움을 하지 않으면 환하게 명백해진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백양사-약사암-백학봉-상왕봉-능선네거리-운문암-약사암 입구-백양사(4시간 소요, 약 7㎞)
▶내비게이션 주소: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
▶주위 볼거리: 축령산, 필암서원, 장성호관광지, 입암산, 남창계곡, 금곡영화마을, 홍길동 테마파크, 황룡 전적지
▶문의: 백양사 종무소 (061)392-7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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