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비카시의 빨간 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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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38면   |  수정 2017-12-08
茶 한 잔 팔아 벽돌 한 장, 또 한 잔 팔아서 또 한 장…새신랑의 부지런함과 순수한 미소로 짓다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비카시의 빨간 벽돌집
견석기 사진작가가 찍은 비카시의 모습.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비카시의 빨간 벽돌집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할 때 일가를 ‘한 집’으로 해석하면 내용이 어색해진다. ‘한 집안을 이루다’도 석연치 않다. 특정 분야에서 독자적 영역을 인정받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때 ‘집(家)’은 완성되었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에스키모인들은 눈이나 얼음으로 집을 짓는다. 야자수와 갈대로 집을 짓는 수단인과 짐승의 날가죽과 소량의 목재로 집을 짓는 시베리아 유목민과는 달리 ‘비카시’는 빨간 벽돌로 집을 짓는다. 그의 벽돌은 남다른 데가 있다. “짜이(차) 한 잔을 팔아서 벽돌 한 장을 사고 또 한 잔을 팔아서 벽돌 한 장을 사 모아 집을 올리고 넓혀간다.” 사진작가 견석기의 말이다. 얼핏 보아도 벽돌 수천 장은 더 있어야 완성될 것 같은 집이다. 지붕까지 완공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 미완의 집 주인은 도비가트 주민 비카시다.

지난 11월15~19일 봉산문화회관에서 대구미술비평연구회가 주최한 ‘창작과 비평-삶, 풍경의 조건’전이 열렸다. 전시기간 내내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두 채의 집이 있었다. 하나는 비카시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비카시 장모의 집이다. 비카시는 사진작가 견석기의 카메라에 포착된 도비가트의 한 청년이다. 그는 갓 결혼한 새신랑이기도 하다. 작가는 6개월간 뭄바이에 머물며 도비가트 사람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도비가트는 인도 뭄바이의 마을이다. 도비왈라가 사는 곳이다. 도비왈라는 그곳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을 칭한다. 비카시는 견석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도비가트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비카시는 그곳에서 차를 달여 파는 일에 종사한다.

많은 사진들 틈엔 집 한 채가 더 있었다. 작고 아담했다. 바로 비카시 장모의 집이다. 결혼한 딸이 떠난 다음 날 기록했다고 한다. 비카시의 집과는 달리 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 실제 공간 속으로 직접 걸음하진 않았지만 촉각적일 만큼 습윤함도 감돈다. 홀로 남아 눈물을 훔치던 모정이 서렸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진촬영을 위해 열었던 대문을 조용히 닫고 카메라로 어미의 슬픔에 동참했던 이유다. 사진에서 감도는 촉촉한 기운은 그런 연유였다. 견석기가 자신의 사진을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큐멘터리형식’이라고 한 까닭이 이해되는 지점이다. 작품은 가끔 감정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인간이 물리적 환경에 반응하는 태도와 이상(理想)은 거리가 있다. 집을 공유하는 것은 인생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집은 한 가지 요소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것을 반영하는 집은 사회제도(혹은 메카니즘)와 비교될 만큼 한 인간의 가치관이나 민족정서와 같은 다양한 요소를 품는다. 기후나 재료에서부터 기술적 토대는 물론 형태마저 그것이 속한 사회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간을 구성하는 집은 다름 아닌 사람이 꿈꾸는 이상이자 미래상이다.

비카시의 빨간 벽돌집도 그렇다. 그의 집도 엄격히 따지면 복합적인 목적을 위해 지어진 하나의 기관(institution)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단순한 구조물 그 이상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미래에 태어날 아기가 함께 지낼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비카시의 꿈이 안전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알뜰하게 벽돌을 모야야 한다. 짜이 한 잔을 더 파는 일엔 벽돌 하나만큼의 시간과 노동이 동반된다. 벽돌이 다 모이면 잘 지어야 하는 것이 수순이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집 전체의 각도나 기울기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철저히 준비하고 길을 나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로는 다르다.

어디 물리적인 형태를 갖춘 집뿐이겠는가? 단체나 조직의 운영도 마찬가지다. 단체의 구성원은 벽돌 하나에 비유된다. 작은 벽돌 하나가 단단하게 제 몫을 다할 때 모든 것은 순조롭다.

어느 영역이건 일가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허물기는 한순간이다. 지난 몇 개월간 수차례 대한민국 땅이 흔들렸다. 무너진 곳도 많다. 그 횟수가 잦아지니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육신은 안전한 은신처부터 찾는다. 민심이 어수선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와중에 마주한 비카시의 벽돌집은 또 하나의 희망이었다. 청년 비카시의 부지런함과 순수한 미소가 담긴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미소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 밝음이다. 비카시에게는 이제 일가를 이룰 일만 남았다. 그런 비카시를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벅차다. 지축이 흔들려도 끄떡없는 집을 짓길 바라는 이국인의 간절함이 국경을 넘어서 비카시의 심장에 가 닿기를 두 손 모은다면 오지랖이라고 할까.

곱게 단풍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낙엽이 졌다. 바람은 찬 겨울을 몰고 왔다. 무덥던 여름날에 그리던 한줄기 바람은 간데없고 잠시 춥다고 부는 바람을 거부하는 몸이다. 그 모습이 간사하게 비쳐질지라도 우리는 이렇듯 누구나 미완이기에 서로 기대며 희망의 집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비카시의 빨간 벽돌집처럼.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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