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시간을 담은 건축] 복합문화공간 ‘F1963’ ‘키스와이어 센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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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38면   |  수정 2019-03-20
와이어 만들던 폐공장에 문화예술이 터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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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테라로사’의 내부. 주요 구조물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넓은 공간에 기계 설비들을 인테리어 소재로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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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와이어 센터’는 와이어 생산 회사의 특성을 살려 설계했다.

‘F1963’. 다소 추상적이고 쉽게 기억되지 않을 듯한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이 부산에 생겨났다. 철제 와이어를 생산하던 고려제강의 옛 공장이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팩토리(factory)의 스펠링 F와 고려제강 설립연도 1963을 더해 F1963이 됐다. 2008년 이후 생산기능이 종료된 이 공장은 ‘2014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되면서 재탄생했다.

2008년 기계 멈춘 부산 고려제강 부지
옛 공장 철거 않고 그대로 문화공간 변신

맹종죽 숲길 들어서면 50여년前 시간여행
‘1963년 만들어진 공장’ 뜻하는 F1963
부산비엔날레 전시장 사용되며 재탄생
기념관·기업연수원인 ‘키스와이어 센터’
28개 와이어만으로 지붕 지탱 설계 눈길


◆키스와이어 센터, 기념관

과거 공장을 철거하지 않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하면서 미래지향적 형태의 기념관과 사옥을 조화롭게 망미동 언덕 지형에 스며들듯 배치하였다. 건물의 출입동선은 지형과 기능에 따라 분리돼 있다. 옛 공장을 지나서 본사 사옥의 출입동선이 있고 옛 공장을 내려다보는 서측 언덕 위 별도의 분리된 동선에는 ‘키스와이어 센터(Kiswire Center)’란 이름의 기념관, 홍보관, 기업 연수원이 만들어졌다.

‘고려제강 기념관’으로도 불리는 키스와이어 센터는 철제 와이어 생산회사의 특성을 설계 콘셉트로 반영했다. 기념관 파사드는 입구에서부터 노출 콘크리트 벽을 지탱하는 듯 와이어의 텐션(tension) 구조를 디자인으로 적용해 긴장감을 준다. 광안대교의 케이블을 제작한 회사답게 와이어의 장점과 특성을 건축 구조에 적용해 기둥이나 보 없이 28개의 와이어만으로 지붕을 지탱하는 설계로 지어졌다. 내부 나선형 계단중력은 와이어 구조에 매달려있다. 야외 데크 물의공간에 올라보면 수영만과 해운대 센텀시티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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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F1963

옛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한 F1963은 도로에서는 깊숙이 안쪽에 위치해 방문객의 눈에는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미루나무와 맹종죽 숲으로 길게 조성된 150여m 길은 도시가 아닌 전원적 힐링을 주는 사잇길이다. 길의 바닥은 공장의 폐콘크리트 조각을 박석처럼 거칠게 깔았고 작은 벤치의 부재도 공장 폐자재를 사용해 진입에서부터 공장 재생의 흔적을 보여준다. F1963은 공장건물 측면으로 진입하기에 전면은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왜소해 보인다.

F1963은 국비 포함 총 32억원을 투자해 탄생한 도시재생사업이다. 부산시와 문화재단, 고려제강의 마인드가 탄생의 주역이다. 그리고 이런 건축과 공간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건축가의 열정과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리라. 옛 공장 형태와 기본골조 이외의 나머지는 공간 운영 목적에 맞게 벽을 세우고 다시 디자인됐다. 그러나 여느 재생건축보다도 인위적인 느낌이 적다. 공장은 시차를 두고 지어진 듯, 길다란 여러 개의 공장건물이 연결돼 내부 기둥간격(SPAN)이 다르고 공간 크기, 구조, 지붕 형태가 다르다. 콘크리트 바닥은 일부 깨어지고 균열이 갔다. 불안한 기둥과 오래된 지붕은 철골구조로 보강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가운데의 외부 공간을 두고 공장건물들이 둘러싼 형태다. 비어진 중정은 이벤트와 공연을 행하는 다목적 기능 공간이다.

F1963은 두 가지 유형으로 사용된다. 행사 시에는 공장 전체가 대형 전시공간이요, 평상시에는 일부의 상업공간이다. 당연히 공장의 공간들은 대형 전시행사가 아니면 가용성이 없으며 일상적 발걸음과 활동성이 없는 공간은 생명력이 없는 시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입구 홀 건너 햇볕이 잘 드는 중정이다. 그 중정의 좌우로 카페 매장들이 있다. ‘카페 테라로사’, 수제 막걸릿집 ‘복순도가’, 수제 맥줏집 ‘프라하 994’ 등 다양한 매장이 입점돼 있다. 중고서점 ‘예스24 F1963점’도 둥지를 틀었다. 서점에는 문학, 인문, 역사, 경제 등의 분야별 중고도서 약 20만권을 갖추고 있다. 특히 카페 테라로사의 인테리어는 낯설지 않은 품격이 있다. 폐공장의 구조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서 넓은 공간에 낡은 원동기 모터 기계 설비들을 인테리어 소재로 배치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커피, 책과 내부 분위기에 취해 오랜 시간을 머물며 여유를 즐긴다.

◆건물과 땅의 재생, 그 가치의 발견

우리 도시 주변에는 오래되거나 용도와 기능이 폐기된 공장, 창고가 많았다. 불과 10여년 전에는 넓고 큰 공장과 부지일수록 효용성과 땅값에서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했다. 고층아파트가 지어지고 상가 할인매장 멀티플렉스가 생겨나면서 넓은 공장 큰 창고의 부지들은 시행사와 건설사의 타깃이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땅값이 오를수록 과거의 건물과 땅은 남아서 존재하기 불가능했다. 지금에 와서는 오랜 세월을 가진 땅과 건물이 사라져버렸음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재생의 노력은 존재하고 있을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전국의 옛 연초제조창들이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 태어난 사례는 대구의 대구예술발전소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볼 수가 있다. 연초제조창은 민영이 아닌 관영이었기에 수익을 따라 곧바로 매각되지 않고 존속돼 있었을 것이다. 민영 고려제강은 공장 부지를 매각하거나 철거 신축하지 않고 지켜온 기업이었고, 지방자치단체와 문화행정이 눈여겨서 살펴보고 문화적 마인드의 실천 협력이 있었기에 F1963으로 재탄생했다.

깨끗함과 밝음에 익숙한 도시인에게 어떻게 낡고 칙칙한 폐공장이 새로운 공간으로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했을까? 컨벤션 등의 대형 고급시설과 깨끗한 갤러리 공간에는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 귀중한 예술작품을 허술한 판자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공장 창고, 균열이 생긴 거친 바닥에서 보는 것도 신선한 감상거리다. 사라져 버릴 수 있었던 과거의 건축공간은 앤티크 가구보다도 더 희귀한 건축 희귀품일 수 있다.

F1963 입구 왼편에는 도시 소비생활 기능의 대형할인매장 건물과 주차장이 버티고 서있다. 오른쪽 언덕 위에는 미래를 지향하는 코끼리 로고마크의 키스와이어 새 건물이 길게 나타난다. 그 중심부, 보이지 않는 미루나무와 맹종죽 숲길로 들어서면 50여 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과 건축이 공존하는 장소다.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한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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