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꿈꾸는 테레즈’ 사태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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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9   |  발행일 2017-12-09 제23면   |  수정 2017-12-09
[토요단상] ‘꿈꾸는 테레즈’ 사태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며칠 전 발튀스(Balthus)란 화가의 이름이 언론 한 귀퉁이를 장식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그림 ‘꿈꾸는 테레즈’(1938)가 성적인 암시를 주므로 그림을 내려 달라는 청원이 이틀 만에 7천명의 지지를 얻자, 작품이란 현재뿐 아니라 여러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며 전 시대와 문화의 중요 작품을 수집, 전시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 밝히면서 미술관 측에서 그림 철거 주장을 반박했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 나체나 성애를 소재로 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리며 위의 사건이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면, 잠시 인터넷에 접속해서 문제가 된 그림 ‘꿈꾸는 테레즈’를 볼 일이다. 두 손을 머리에 얹고 눈을 감은 채 쿠션에 기대어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를 그린 것인데, 한 발을 의자에 올려놓아 속옷이 보인다. 이러한 포즈 때문에 청원자들이 ‘이 그림의 전시가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관음증을 낭만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리라.

‘꿈꾸는 테레즈’의 작품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작품의 존재 의의를 강조하는 데로 이어지게 마련인 까닭이다. 청원자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따져볼 의향도 없다. 이는 예술과 윤리라는 실로 오래된 추상적인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어 그 또한 답이 정해져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 여기서는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어떠한 답을 내놓는가에 따라서 예술과 윤리, 문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한 자락 드러나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예상 가능한 답은 세 가지 정도다. 미술관의 입장 표명 이후 청원이 흐지부지되어 이 사태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첫째고, 청원자들이 늘고 여론이 드세져 미술관이 그림을 철거하는 것이 둘째다. 셋째는 일종의 타협책으로서 성인만 관람할 수 있는 제한된 방식으로 그림을 전시하는 것 정도가 되겠다.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다음인데, 예를 들어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다면 앞의 세 가지 중에서 어떤 답이 가장 많이 선택될까 하는 문제다.

‘꿈꾸는 테레즈’는 분명 소녀 성애적인 측면이 있기에 그림을 보면서 선택을 한다면 많은 사람이 청원자들에게 동조하는 둘째 답을 내놓으리라 추측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그래도 예술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아마도 셋째 답안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첫째 답안이 우세할 가능성은 별로 없으리라고 예상된다.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치지 않는 한, 이러한 사태가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데는 예술의 역사와 특성 그리고 가치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교육이나 문화 풍토가 그러한 것을 마련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 경우의 이런 예상이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을 낮게 보는 자민족 폄훼의 문제를 띤다고 비판될 수도 있겠다. 그런 혐의의 여지를 잘 알지만, 이 예상을 바꿀 생각은 없다. 우리의 문화예술 교육이 척박한 것이야 명백한 사실이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근래 보여온 행태 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거 9년간 문화예술계를 좌지우지해 왔던 전문가들이 보수 이념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해 온 것이나, 최근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위촉과 관련된 잡음으로까지 이어진 친일문학상 논란 모두 이념에 근거하여 문화 현상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이다. 전문가부터가 이러하여 애초에 위와 같은 사태를 낳을 상황 자체가 마련되어 오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 설혹 그런 경우가 생긴다 해도 그것이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대중이 바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게 된다. 문화의 풍요로운 발전이라는 취지에서 이러한 기대가 실현되기를 희망한다면 먼저 우리나라의 문화적 풍토를 반성해 볼 일이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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